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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classical cinema

차이니즈 부키의 죽음, The Killing Of A Chinese Bookie

1976년 존 카사베츠 작
30년 넘게 해먹은 느와르의 플롯을 가져와 허세를 벗겨냈다. 큰 체구를 가려주는 트렌치코트도, 음울함을 신비스럽게 바꾸는 얼굴의 반을 가린 중절모도, 가래 좀 뱉었음 하는 쫙 깔은 중저음의 목소리도, 쥑여주는 액션씬도 없다. 이 영화는 보여주는 위한 것이 아니라 '느끼게' 해준다. 무엇을? 나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남자들의 쓸데없는 자존심과 진짜 허세를. 느와르적 허세(곧 죽어도 존나 멋지게 죽을 거다 하는 등의)가 아니라 현실에서 한번쯤은 느껴봤음 직한 그런 것들 말이다. 현실에선 팜므파탈의 치명적인 계략이나 미모 때문에 패가망신하는 사람보단,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자신을 거인처럼 보이게 해주는 외적인 체험(이를 테면 판 큰 도박이겠지)에 중독되어 인생 쫑났다는 사람을 많이 봤으니 말이다. 
이런 영화를 볼 때마다 생각하는데 그때마다 시대적 반영이라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4,50년대 화려한 느와르의 시대를 벗어나 더 이상 사람들이 그 트릭에 속지 않고 질렸을 때 즈음, 이런 영화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그렇다고 차이니즈 부키의 죽음이 느와르의 특성을 까대는 영화는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21세기인 지금엔 이런 컨셉도 좀 지겹다. 냉소적인 뒷골목 이야기는 이젠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는 느와르 뒤에 숨겨진 현실을 체험하는 장르의 시초였으며 마지막이다. 낭만적 허세도, 진짜 허세도 나왔으니 이제 또 나올 건 뭐가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