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린지 앤더슨 작
전통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통제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악의 꽃을 만들어낸다. 이들이야말로 보들레르의 유일한 독자이며, 그래서 그들의 존재는 슬펐다. 왜 그 시절 그들에겐 '전통에 반항하는 것이 유행'이 되어버렸을까? 영화가 만들어진 지도 벌써 40년이 지났다. 권위와 전통에 대한 끝없는 반항 정신으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냈던 시절은, 그들은 옳았던가? 아니 질문이 잘못됐다. 지금 우리는 옳은가? 투쟁도, 권태도, 절망도, 희망도, 순수도, 더러움도. 그 모든 정신은 모두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정신으로 수작질하는 야비한 이들만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 갈구하지도 않는다. 인용하고 장난치고 농담할 뿐이다. 다시 돌아가서, 그들은 옳았을까? 나도 모른다. 그럼 우리는 옳을까? 나도 모른다. 단 한 가지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이 순간이 무섭도록 지겹고 재미없다는 사실이다.
과거를 욕하기엔 너무 낭만적이고, 좋아하기엔 머리가 커버린 현재. 미래의 독자를 기다리자.
★★★★
전통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통제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악의 꽃을 만들어낸다. 이들이야말로 보들레르의 유일한 독자이며, 그래서 그들의 존재는 슬펐다. 왜 그 시절 그들에겐 '전통에 반항하는 것이 유행'이 되어버렸을까? 영화가 만들어진 지도 벌써 40년이 지났다. 권위와 전통에 대한 끝없는 반항 정신으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냈던 시절은, 그들은 옳았던가? 아니 질문이 잘못됐다. 지금 우리는 옳은가? 투쟁도, 권태도, 절망도, 희망도, 순수도, 더러움도. 그 모든 정신은 모두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정신으로 수작질하는 야비한 이들만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 갈구하지도 않는다. 인용하고 장난치고 농담할 뿐이다. 다시 돌아가서, 그들은 옳았을까? 나도 모른다. 그럼 우리는 옳을까? 나도 모른다. 단 한 가지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이 순간이 무섭도록 지겹고 재미없다는 사실이다.
과거를 욕하기엔 너무 낭만적이고, 좋아하기엔 머리가 커버린 현재. 미래의 독자를 기다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