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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MARK/literature

크리스마스 캐럴/김영하

그때였다. 삐리리릭. 영수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정식이었다. 그의 말은 짧았다. 테레비 켜봐라. 영수는 허둥지둥 리모컨을 찾아 안방의 소형텔레비전의 전원을 켰다. 칠번이야. 화면은 포박당한 채 끌려나오는 중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 꼭지의 뉴스가 끝나버렸기 때문에 사건의 영문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래? 영수가 물었다. 뉴스에서는 그러네. 중권이가 죽였다고. 영수는 기계적으로 반문했다. 중권이가 왜? 정식은 긴장이 풀려나간, 그래서 조금은 아쉬운 듯한 목소리로 힘없이 대꾸했다. 모르지. 경찰 말로는, 만나주지 않는 데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는데, 너도 알다시피, 그날 같이 술도 마셨잖아. 쩝. 영수는 입맛을 다셨다. 아마 개인적으로 만나주지 않았다는 거겠지. 그나저나 중권이 그 새끼. 인생 종쳤네. 뭐, 종친 게 그 새끼 뿐이냐. 진숙이도 간만에 고국이랍시고 들어왔다가 종쳤고, 넌 임마 멀쩡한 거야? 마누라 다 안다며? 멀쩡할 리가 있겠냐. 난 멀쩡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근데 이상한 건 말이지, 왜 우리가 이렇게 찝찝하냐 말이지. 씨발 나는 손에 피 한방울 안 묻혔는데 말이야. 정식이 발끈했다. 누군 묻혔냐? 인생이 씨발 다 그런 거 아니냐. 그나저나 요 며칠 잠 못 자서 죽을 뻔했는데 이젠 좀 다리 뻗고 자겠다. 자, 그럼 또 연락하자. 전화가 끊어졌다. 영수는 방을 나와 뾰로통한 채 텔레비전에만 시선을 주고 있는 아내에게 갔다. 다정한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이봐, 곧 크리스마스잖아. 백화점에 트리라도 사러 가지 않을래?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표정의 아내에게 영수는 복음을 전하는 동방박사처럼 한껏 과장된 어조와 몸짓으로 말했다. 진숙이 말이야, 중권이 그 개새끼가 죽인 거래. 아까 뉴스에 나왔대. 씨팔 새끼 연락이라도 좀 해주지. 괜히 걱정하고 있었잖아! 숙경은 그런 영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아쉬움과 경멸을 반반쯤 섞어 씹어뱉듯이 말했다. 정말 대단한 친구들이셔. 영수는 화를 누르며 다시 한번 말했다. 트리 사러 갈 거야? 안 갈 거야? 숙경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럼 관두든지. 영수는 버럭 화를 내고는 화장실로 갔다. 손을 씻어낸 물이 핏물처럼 벌겠다. 난 죽이지 않았다구.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니 뱃살이 늘어지고 눈꼬리가 처진 낯선 남자 하나가 서서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그거 엄마가 놓아랬지! 숙경이 아이에게 발악하듯 소리를 질러댔다. 싼타클로시즈 커밍 투 타운. 아이가 진숙이 보낸 빨간 크리스마스 카드를 펼쳐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내가 카드를 갈기갈기 찢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그러나 음악이 내장된 중국산 칩에서는 단조로운 전자음 캐럴이 계속 송출되고 있었다. 영수는 어느새 그 가락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대고 있었다. 싼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오늘밤에 찾아 오신대. 랄라라라랄라라 랄라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