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MARK/literature

아들은 가렵다

아들은 가렵다

 

              이승하

 

아들은 긁고 있다 팔과 다리

목과 배에 피맺힌다 팔과 다리에 피맺힌다

아들의 손을 꼭 잡는다 잡고서 놓지 않는다

그만 좀 긁어 그만 좀 긁어라 얘야

자다가도 긁고, 일어나면 긁기부터 한다

태어나자마자 만난 가려운 세상

가렵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안돼 밀가루로 만든 건 먹으면 안돼

과자와 고기를 먹으면 더 심해지는 가려움증

앙상한 몰골로 과자와 고기만 먹으려 한다

햄버거·피자 가게를 지날 때마다 먹고싶어

울상을 짓는다 고기와 달걀이 빠진 김밥

맛깔스러움과 즐거움이 빠진 김밥

소풍날 울먹이며 도시락을 받아간다

 

벌겋게 된 피부가 햇살 아래서 일어난다

살비듬이 떨어져 나간다

미친 듯이 긁고 싶기만 한 세상

맺힌 피 줄줄 흘러내릴 때 까지

가려워서 긁고 긁고 또 긁는 내 아들 

문명의 튼튼한 몸이 덮친 아들의 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