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cinema
하나 그리고 둘, Yi Yi
Jean Cocteau
2011. 4. 8. 23:16
2000년 에드워드 양 작
사랑하고 헤어지고 울고 살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눈을 감고 잠을 자거나, 죽거나. 그리고 다시 살거나. 답은 없다. 이 터전은 누군가에겐 '싸우고, 이기고, 지는' 곳이고 '도망치고, 뒤돌아보는' 공간이며 '더는 생각하지도 못할 무자비한' 것, 삶이다. 굳이 답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 가끔 내 뒷통수를 지켜볼 수 정도의 진실을 마주할 정신만 있다면 적어도 바보짓은 안하겠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아이가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인생에 지쳐 할머니의 품에서 다시 눈을 감을 때, 그 아이가 부러워진다면 초등학생 꼬마의 말대로 나이가 드는가 보다.
이 영화에서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일본 여행 장면이다. NJ나 첫사랑의 이야기와 그에 교차하며 회상하듯 흘러나오는 딸의 연애 장면은 좋았다. 단지 왜 그곳이 일본이어야만 하는 물음은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장 지루했고, 불필요하게 느껴진 장면이 한둘이 아닌 곳이 바로 여행 장면이다. NJ와 첫사랑이 밟아 나가는 상처의 풍경이 마치 '일본으로 놀러오시므니까' 하는 식의 홍보 영상과 같다. 나름대로 변명 거리를 생각해보기도 했다. 둘 다 가정이 있는 몸이고 어딘가에 매여 있는 존재이므로, 그것을 가볍게 여겨 줄 공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의 투자로 시작된 영화라는 것이 내 보잘 것 없는 변명거리를 무색게 만드는구나. 정말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의 풍경은 일본의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질 못했다. 그 장면들을 제외하고 카메라가 대만 중산층의 살만함과 외로운 거리를 제대로 포착해냈다는 데엔 찬성한다. 근데, 일본 홍보 영상이 정말로 나를 짜증 나게 만든다. 딸아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NJ가 일본 출장을 다녀왔다고 말하는 그 툭 던져진 장면을 보고 나는 눈물을 흘렸다. 여행 장면에서 하도 하품을 해대다 보니 눈물이 고였었나 보다. 다행히도 그 뒤에 흘린 눈물은 감독이 말하는 삶에 대한 것이었다.
★★★★☆
사랑하고 헤어지고 울고 살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눈을 감고 잠을 자거나, 죽거나. 그리고 다시 살거나. 답은 없다. 이 터전은 누군가에겐 '싸우고, 이기고, 지는' 곳이고 '도망치고, 뒤돌아보는' 공간이며 '더는 생각하지도 못할 무자비한' 것, 삶이다. 굳이 답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 가끔 내 뒷통수를 지켜볼 수 정도의 진실을 마주할 정신만 있다면 적어도 바보짓은 안하겠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아이가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인생에 지쳐 할머니의 품에서 다시 눈을 감을 때, 그 아이가 부러워진다면 초등학생 꼬마의 말대로 나이가 드는가 보다.
이 영화에서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일본 여행 장면이다. NJ나 첫사랑의 이야기와 그에 교차하며 회상하듯 흘러나오는 딸의 연애 장면은 좋았다. 단지 왜 그곳이 일본이어야만 하는 물음은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장 지루했고, 불필요하게 느껴진 장면이 한둘이 아닌 곳이 바로 여행 장면이다. NJ와 첫사랑이 밟아 나가는 상처의 풍경이 마치 '일본으로 놀러오시므니까' 하는 식의 홍보 영상과 같다. 나름대로 변명 거리를 생각해보기도 했다. 둘 다 가정이 있는 몸이고 어딘가에 매여 있는 존재이므로, 그것을 가볍게 여겨 줄 공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의 투자로 시작된 영화라는 것이 내 보잘 것 없는 변명거리를 무색게 만드는구나. 정말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의 풍경은 일본의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질 못했다. 그 장면들을 제외하고 카메라가 대만 중산층의 살만함과 외로운 거리를 제대로 포착해냈다는 데엔 찬성한다. 근데, 일본 홍보 영상이 정말로 나를 짜증 나게 만든다. 딸아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NJ가 일본 출장을 다녀왔다고 말하는 그 툭 던져진 장면을 보고 나는 눈물을 흘렸다. 여행 장면에서 하도 하품을 해대다 보니 눈물이 고였었나 보다. 다행히도 그 뒤에 흘린 눈물은 감독이 말하는 삶에 대한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