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cinema

천국의 나날들, Days Of Heaven

Jean Cocteau 2011. 4. 13. 11:09
1978년 테렌스 맬릭 작
 끊임없는 메타포적 영상들, 때문에 영상 시인이라고 불리는 감독.
천국의 나날들은 서정적이지만 감정적이지 않고 토속적이지만 지루하지 않다. 감독들은 때때로 시골 풍경을 그릴 때, 지나치게 농민의 의식을 신성화하거나 길게 늘여놔서 변방 약장수의 썰렁한 익살극만큼이나 사람을 지루하게 만든다. 하지만 테렌스 맬릭의 영상은 그 무엇도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길지 않다. '야 이게 진실이야'하며 재미없는 풍경을 툭 던져놓지도 않는다. 그 절묘한 운율감에서 시적 감성이 나오는 것일 테다. 이 운율감을 즐길 수 있다면 당장에 테렌스 맬릭의 광팬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테렌스 맬릭의 영화에 그 흔한 부담스러운 자의식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의 영화에 담긴 풍경은 얼핏 감상적으로 보일지언정 감정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테렌스 맬릭의 풍경이 감정적이거나 낭만주의로 읽힌다면 그것은 영상에 나타나는 암시와 극대화된 아름다움 때문일 텐데 나는 기본적으로 영화에 필요한 것은 현실을 최대한 미적으로 보여주는 것, 곧 화면을 지배하는 감독의 아름다움에 대한 취향이라고 믿는다. 테렌스 맬릭의 영상은 영화적 아름다움일 뿐이지 낭만주의적 아름다움은 아니다. 감독이 시골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기 위해 매직아워를 적극 활용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는 365일 쉼 없이 일하는 품팔이들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 상황은 아이의 짧은 나레이션으로 모두 설명되고 끝이 난다) 하루에 20분 동안만 존재하는 풍경의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 안에는 떠돌이가 가진 위치의 사랑이나 자아 성찰이 아니라, 자연 속의 그림자가 된 인간의 모습만이 있다. 그 들은 숲 속에서 떨고 있는 나뭇잎이나 바람에 대항하는 오리와 같은 존재가 된다. 이들의 모습이 그저 아름다워 보이기만 한다면 자연에 대한 이상화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태양과 흙과 바람과 빗속에서 싸우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고 안정을 취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끊임없는 힘의 의지로 모든 유기체가 서로 독려하며 살아가는 곳인 것이다. 때문에 인간 또한 빛과 하늘 아래에 풍경의 하나가 되어 윤곽을 지우고 섞여들게 된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주인공들에게 자연은 낭만주의적 쉼터가 아닌 삶 그 자체라는 것이다. 주인공들에게 더 이상 투쟁이 필요하지 않아 권태가 찾아왔을 때의 자연은 탐미주의적이 되고, 그들은 윤곽선을 지닌 인간적 형태를 지니게 된다. 그들은 더 이상 자연 속에 섞일 수 없는 사회적 인간이 되었다. 그것은 빌의 비극적인 최후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자연은 절대로 심판하거나 벌주지 않는다. 이질적이고 더 이상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존재를 뱉어내는 것 뿐이다. 감독의 농민에 대한 사랑을 보고 싶다면 나막신 나무를 보는 것이 낫다. 천국의 나날들은 풍광이 주는 그 쓸쓸한 아름다움에 관한 영화이니.
또 하나 낭만적으로 읽힐 수 있는 것은 이야기의 비극성인데 그들은 사랑에서 맹목적이고도 극단적인 것을 가지고는 있지만 사실 감독은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남녀 간의 사랑은 비극을 떠나 그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다. 그 낭만적인 풍경의 그림자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은 존재의 외로움 또는 부조리함일 수도, 세속적인 물질에 대한 뒤틀린 웃음일 수도 있다. 내가 테렌스 맬릭의 두 편의 영화에서 가장 깊게 받아들인 것은 다름 아닌 외로움이다. 사랑을 받아들이는 순간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이 멀어지고, 권태가 찾아오지만 그 누구와도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지점에 놓여 있다. 자연은 거대해서 외로운 존재 몇 개쯤은 쉬이 가려주지만 그 누구보다 많은 감시의 눈이 그들의 뒤틀린 모습을 쫓고 있으며, 하나뿐인 생존 수단이자 집인 작은 배를 밖으로 밀어낸다. 영화 속 자연은 마치 도피처와 같은 낙원처럼 그려지지만 그의 자연은 루소의 자연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니체적이다. 그것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이 황무지이고, 천국의 나날들의 주인공이 삶의 터전이었던 자연을 벗어나자 도피처로서의 이상화된 자연이 그를 냉담하게 처치한다. 마 귀 같은 해가 작은 배밖에 없는 그 가련한 존재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것이다. 넌 이런 배조차 가질 수 없는 인간이라는 듯이. 그래서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인물은 그 누구도 미워할 수 없다. 언젠가는 무언가를 잃게 될 운명이므로. 그의 메타포는 아름다움으로 꽉꽉 채우고 물려 풍성해 보이지만, 사실 가장 외로운 단어로 만들어진 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