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MARK/humanities
타인의 고통/수전 손택
Jean Cocteau
2011. 4. 2. 12:25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것과 별개로, 고통을 증명한다는 것에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통을 둘러싼 도상학은 기나긴 족보를 갖고 있다. 흔히 재현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간주되는 고통은 신이나 인간의 분노가 낳은 것이라고 이해되는 고통이다(예술의 역사에서 질병이나 출산처럼 자연적인 고통이 재현된 적은 거의 없다. 사고로 인한 고통도 실질적으로 전혀 없다. 마치 부주의나 불운으로 발생한 고통같은 것은 없다는 듯이 말이다). 몸을 뒤틀고 있는 라오콘과 그의 자녀들의 모습을 묘사한 군상, 회화와 조각에서 셀 수도 없이 반복된 예수의 수난, 그리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방법으로 처형당하는 기독교 순교자들의 모습을 담은 온갖 시각 이미지―확실히, 이런 것들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흥분시키며, 뭔가 교훈을 주거나 본보기를 보이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관람객은 이 고통받는 자들의 아픔을 딱하게 여기리라. 그리고 기독교 성인들을 볼 경우에는 뭔가 교훈을 얻거나 이 신앙심과 굳건함의 본보기를 통해서 뭔가 영감을 얻으리라. 그러니 이런 것들은 개탄이나 논쟁의 대상이 될 운명에서 벗어나 있다.
고통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한 것이다. 수세기 동안 기독교 예술은 지옥의 묘사를 통해서 이 두 가지 기본적인 욕망을 모두 충족시켰다. 때때로 실제의 역사적 사건이나 무자비한 운명을 보여주기 위해서 성경에 등장하는 참수 일화(홀로페르네스, 세례자 요한)나 다소 과장된 대량학살 일화(갓 태어난 헤브라이 남자 아기들, 일만 일천 명의 처녀들)를 전거로 삼는 경우도 있었고, 전통적인 옛 설화에서 가려낸 도저히 눈뜨고 쳐다볼 수 없을 만큼 잔인한 레퍼토리도 있었다. 특히, 이교도 신화는 만인의 취향에 알맞은 이야기들을 기독교 전설보다 훨씬 더 많이 제공했다. 이런 잔혹함을 재현한다고 도덕적 비난을 받지는 않았다. 단지 도발만이 있었을 뿐이다. "자, 이것을 쳐다볼 수 있겠어?" 조금도 움찔하지 않은 채 이런 이미지를 쳐다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움찔거린다는 것 자체도 일종의 쾌락이다. 용이 사람 머리를 으지적으지적 씹어대는 장면을 묘사한 골치우스의 동판화『카드모스의 동료들을 집어삼키는 용』(1588)을 보고 전율한다는 것과 총에 맞아 얼굴이 날아가 버린 제1차 세계대전 참전군인의 사진을 보고 전율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 전자가 뭔가를 말해준다면, 후자는 아무것도 말해주는 바가 없다. 창조된 공포는 전적으로 불가항력적인 것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실제의 공포를 근접 촬영한 이미지를 쳐다볼 때에는 충격과 더불어 수치감이 존재한다. 아마 극한의 상태에서 발생한 현실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를 쳐다볼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사람은 그런 고통을 격감시키려 뭔가를 할 수 있었던 사람(즉, 그런 사진이 촬영됐던 군사 병원의 외과의사)이나 그런 고통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었던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의도했든 안 했든, 나머지 우리는 관음증 환자이다.
사진 배경이 되는 장소가 될 수 있는 한 멀리 떨어져 있고 이국적이면 이국적일수록, 우리는 죽은 자들이나 죽어 가는 자들의 정면 모습을 훨씬 더 완전하게 볼 수 있다. 따라서 신식민지화된 아프리카는 부유한 나라에 살고 있는 일반 대중들의 의식 속에 (그곳의 육감적인 음악을 제외한다면) 주로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있는 히생자들의 모습이 담긴 일련의 잊지 못할 사진들로 존재한다. 1960년대 말 기근이 들린 비아프라 주민들의 모습에서부터 1994년 거의 백만 명이 죽어 갔던 대량 학살에서 살아남은 르완다 투치족 생존자들의 모습, 그리고 몇 년 뒤 시에라리온의 반군 세력인 <통일혁명전선>이 공포 정책을 펴나가던 시기에 그들에게 사지가 잘린 어른들과 어린아이들의 모습 등을 담은 사진들이 그렇다(좀더 최근 사례를 들어보자면, 빈곤에 찌든 채 에이즈로 죽어 가는 일가족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있다). 이런 사진들이 보여주는 광경에는 이중의 메시지가 있다. 이 사진들은 잔인하고 부당한 고통, 반드시 치유해야만 할 고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런 고통은 다름 아닌 바로 그런 곳에서 발생하는 일이라고 믿게 만든다. 곳곳에 존재하는 이런 사진들, 이처럼 끔찍하기 짝이 없는 사진들은 이 세상의 미개한 곳과 뒤떨어진 곳(간단히 말해서 가난한 나라들)에서야 이런 비극이 빚어진다는 믿음을 조장할 수밖에 없다.
"매일 국가적 사건들이 발생하며, 모두 획일적인 직업을 가진 탓에 기이한 일들을 역망하게 되고 이 열망을 급속한 정보 전달이 매시간 충족시켜 주는 도시로 사람들이 점점 더 모여들고 있다는 사실"이 야기한 감수성의 붕괴를 고발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지나치게 자극을 받게 되면 "정신의 분별력이 무뎌질" 뿐만 아니라 "정신이 미개하다고 할 만큼 무감각해지는 상태에 빠지는" 결과가 빚어진다는 것이다.
이 영국의 시인은 '매일' 벌어지는 사건들과 '매시간' 들려오는 '기이한 일들' 탓에 정신이 무뎌진다고 지적했다)그것도 1800년에!). 그리고 정확히 어떤 사건들과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신중하게도 독자들의 상상력에 맡겼다. 그러보투 60여 년이 지난 뒤, 또 한 명의 위대한 시인이자 문화 진단자가 이보다 훨씬 더 격하게 똑같은 점을 지적했다.(이 사람은 프랑스인이었는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프랑스인들을 낮춰 말하는 경향이 있는 영국인들이 그랬듯이, 사람들은 그가 지나치게 과장을 일삼는다는 딱지를 붙였다). 그 프랑스인 보들레르가 1860년대 초 자신의 일기에 적어놓은 기록을 살펴보도록 하자.
매일, 매달, 혹은 매년 신문지상에 인간의 사악함이 빚어낸 가장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소식이 실리지 않을 때가 없다.(…) 처음 줄부터 끝줄까지, 모든 신문들은 공포에 질릴 만한 소식투성이이다. 군주들, 국가들, 사적 개인들이 저지른 온갖 전쟁, 범죄, 절도, 호색, 고문, 사악한 행위, 온 세상에 판치는 잔악 행위 등등. 문명화된 인간은 매일 이 메스꺼운 전채로 아침식사의 식욕을 돋운다.
보들레르가 이 글을 썼을 당시에는 아직 신문에 사진이 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전 세계의 끔찍한 소식들이 실린 조간 신문을 든 채 식탁에 앉아 아침식사를 하는 부르주아지를 힐난하는 보들레르의 묘사가 오늘날의 비판, 즉 우리가 매일 조간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통해서 받아보는 끔찍한 소식들이 우리의 감수성을 얼마나 무디게 만들어 버리는가에 대한 비판과 뭔가 달라질 것은 전혀 없다. 단지 최신 기술이 그런 소식들을 쉴새없이 제공해 준다는 점만을 빼고는 말이다. 그 덕택에 우리는 눈만 돌리면 수많은 참사와 잔악 행위를 볼 수 있게 됐다. (…) 한번 충격을 줬다가 이내 분노를 일으키게 만드는 종류의 이미지가 넘쳐날수록, 우리는 반응 능력을 잃어가게 된다. 연민이 극한에 다다르면 결국 무감각에 빠지기 마련이며, 그래서 통속적인 처방이 내려지는 법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정작 무엇인가?
고통을 둘러싼 도상학은 기나긴 족보를 갖고 있다. 흔히 재현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간주되는 고통은 신이나 인간의 분노가 낳은 것이라고 이해되는 고통이다(예술의 역사에서 질병이나 출산처럼 자연적인 고통이 재현된 적은 거의 없다. 사고로 인한 고통도 실질적으로 전혀 없다. 마치 부주의나 불운으로 발생한 고통같은 것은 없다는 듯이 말이다). 몸을 뒤틀고 있는 라오콘과 그의 자녀들의 모습을 묘사한 군상, 회화와 조각에서 셀 수도 없이 반복된 예수의 수난, 그리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방법으로 처형당하는 기독교 순교자들의 모습을 담은 온갖 시각 이미지―확실히, 이런 것들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흥분시키며, 뭔가 교훈을 주거나 본보기를 보이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관람객은 이 고통받는 자들의 아픔을 딱하게 여기리라. 그리고 기독교 성인들을 볼 경우에는 뭔가 교훈을 얻거나 이 신앙심과 굳건함의 본보기를 통해서 뭔가 영감을 얻으리라. 그러니 이런 것들은 개탄이나 논쟁의 대상이 될 운명에서 벗어나 있다.
고통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한 것이다. 수세기 동안 기독교 예술은 지옥의 묘사를 통해서 이 두 가지 기본적인 욕망을 모두 충족시켰다. 때때로 실제의 역사적 사건이나 무자비한 운명을 보여주기 위해서 성경에 등장하는 참수 일화(홀로페르네스, 세례자 요한)나 다소 과장된 대량학살 일화(갓 태어난 헤브라이 남자 아기들, 일만 일천 명의 처녀들)를 전거로 삼는 경우도 있었고, 전통적인 옛 설화에서 가려낸 도저히 눈뜨고 쳐다볼 수 없을 만큼 잔인한 레퍼토리도 있었다. 특히, 이교도 신화는 만인의 취향에 알맞은 이야기들을 기독교 전설보다 훨씬 더 많이 제공했다. 이런 잔혹함을 재현한다고 도덕적 비난을 받지는 않았다. 단지 도발만이 있었을 뿐이다. "자, 이것을 쳐다볼 수 있겠어?" 조금도 움찔하지 않은 채 이런 이미지를 쳐다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움찔거린다는 것 자체도 일종의 쾌락이다. 용이 사람 머리를 으지적으지적 씹어대는 장면을 묘사한 골치우스의 동판화『카드모스의 동료들을 집어삼키는 용』(1588)을 보고 전율한다는 것과 총에 맞아 얼굴이 날아가 버린 제1차 세계대전 참전군인의 사진을 보고 전율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 전자가 뭔가를 말해준다면, 후자는 아무것도 말해주는 바가 없다. 창조된 공포는 전적으로 불가항력적인 것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실제의 공포를 근접 촬영한 이미지를 쳐다볼 때에는 충격과 더불어 수치감이 존재한다. 아마 극한의 상태에서 발생한 현실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를 쳐다볼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사람은 그런 고통을 격감시키려 뭔가를 할 수 있었던 사람(즉, 그런 사진이 촬영됐던 군사 병원의 외과의사)이나 그런 고통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었던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의도했든 안 했든, 나머지 우리는 관음증 환자이다.
사진 배경이 되는 장소가 될 수 있는 한 멀리 떨어져 있고 이국적이면 이국적일수록, 우리는 죽은 자들이나 죽어 가는 자들의 정면 모습을 훨씬 더 완전하게 볼 수 있다. 따라서 신식민지화된 아프리카는 부유한 나라에 살고 있는 일반 대중들의 의식 속에 (그곳의 육감적인 음악을 제외한다면) 주로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있는 히생자들의 모습이 담긴 일련의 잊지 못할 사진들로 존재한다. 1960년대 말 기근이 들린 비아프라 주민들의 모습에서부터 1994년 거의 백만 명이 죽어 갔던 대량 학살에서 살아남은 르완다 투치족 생존자들의 모습, 그리고 몇 년 뒤 시에라리온의 반군 세력인 <통일혁명전선>이 공포 정책을 펴나가던 시기에 그들에게 사지가 잘린 어른들과 어린아이들의 모습 등을 담은 사진들이 그렇다(좀더 최근 사례를 들어보자면, 빈곤에 찌든 채 에이즈로 죽어 가는 일가족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있다). 이런 사진들이 보여주는 광경에는 이중의 메시지가 있다. 이 사진들은 잔인하고 부당한 고통, 반드시 치유해야만 할 고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런 고통은 다름 아닌 바로 그런 곳에서 발생하는 일이라고 믿게 만든다. 곳곳에 존재하는 이런 사진들, 이처럼 끔찍하기 짝이 없는 사진들은 이 세상의 미개한 곳과 뒤떨어진 곳(간단히 말해서 가난한 나라들)에서야 이런 비극이 빚어진다는 믿음을 조장할 수밖에 없다.
"매일 국가적 사건들이 발생하며, 모두 획일적인 직업을 가진 탓에 기이한 일들을 역망하게 되고 이 열망을 급속한 정보 전달이 매시간 충족시켜 주는 도시로 사람들이 점점 더 모여들고 있다는 사실"이 야기한 감수성의 붕괴를 고발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지나치게 자극을 받게 되면 "정신의 분별력이 무뎌질" 뿐만 아니라 "정신이 미개하다고 할 만큼 무감각해지는 상태에 빠지는" 결과가 빚어진다는 것이다.
이 영국의 시인은 '매일' 벌어지는 사건들과 '매시간' 들려오는 '기이한 일들' 탓에 정신이 무뎌진다고 지적했다)그것도 1800년에!). 그리고 정확히 어떤 사건들과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신중하게도 독자들의 상상력에 맡겼다. 그러보투 60여 년이 지난 뒤, 또 한 명의 위대한 시인이자 문화 진단자가 이보다 훨씬 더 격하게 똑같은 점을 지적했다.(이 사람은 프랑스인이었는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프랑스인들을 낮춰 말하는 경향이 있는 영국인들이 그랬듯이, 사람들은 그가 지나치게 과장을 일삼는다는 딱지를 붙였다). 그 프랑스인 보들레르가 1860년대 초 자신의 일기에 적어놓은 기록을 살펴보도록 하자.
매일, 매달, 혹은 매년 신문지상에 인간의 사악함이 빚어낸 가장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소식이 실리지 않을 때가 없다.(…) 처음 줄부터 끝줄까지, 모든 신문들은 공포에 질릴 만한 소식투성이이다. 군주들, 국가들, 사적 개인들이 저지른 온갖 전쟁, 범죄, 절도, 호색, 고문, 사악한 행위, 온 세상에 판치는 잔악 행위 등등. 문명화된 인간은 매일 이 메스꺼운 전채로 아침식사의 식욕을 돋운다.
보들레르가 이 글을 썼을 당시에는 아직 신문에 사진이 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전 세계의 끔찍한 소식들이 실린 조간 신문을 든 채 식탁에 앉아 아침식사를 하는 부르주아지를 힐난하는 보들레르의 묘사가 오늘날의 비판, 즉 우리가 매일 조간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통해서 받아보는 끔찍한 소식들이 우리의 감수성을 얼마나 무디게 만들어 버리는가에 대한 비판과 뭔가 달라질 것은 전혀 없다. 단지 최신 기술이 그런 소식들을 쉴새없이 제공해 준다는 점만을 빼고는 말이다. 그 덕택에 우리는 눈만 돌리면 수많은 참사와 잔악 행위를 볼 수 있게 됐다. (…) 한번 충격을 줬다가 이내 분노를 일으키게 만드는 종류의 이미지가 넘쳐날수록, 우리는 반응 능력을 잃어가게 된다. 연민이 극한에 다다르면 결국 무감각에 빠지기 마련이며, 그래서 통속적인 처방이 내려지는 법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정작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