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MARK/humanities
우리 안의 히틀러/막스 피카르트
Jean Cocteau
2011. 3. 9. 12:24
이제 언어는 … 더 이상 창조적이지 않다. 그저 명령만 일삼는다. 그건 휘파람이며, 명령의 고함이다. 언어는 이런 식으로 작동하게 된다. 현실을 명령할 뿐, 창조적인 산출은 없다.
그저 울림뿐인, 의미를 갖지 않는 단어는 기호에 불과하다. 의미를 갖지 않는 단어는 순간의 비명에 지나지 않는다. 의미란 지속과 연관을 가져야 나타나고 실현되는 것이다. 히틀러의 말에 무슨 의미가 있던가? 그것은 찰나의 비명에 불과했다. 히틀러의 말은 구호로 전락한 비명이다. 어떤 행동도 낳지 못하는 불모의 표어, 이미 있는 행위에 갖다 붙인 외마디.
구호를 필요로 하는 것은 행위가 아니다. 히틀러는 이미 일을 저질러놓고, 말하자면 이미 상대를 급습해놓고 그 뒤통수에 대고 고함을 외칠 뿐이다. 여기서 단어는 상표로 전락한다. 저지른 행위를 분류하기 위해 붙이는 표식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히틀러의 행위에는 의미가 없다.
행위란 말, 즉 논리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히틀러의 행위는 논리 밖의 것이라 적절하게 갖다 붙일 말도 없다. 그래서 히틀러의 행위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어처구니가 없다. 입으로 말해질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말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행위는 그래서 무섭다. 논리의 저편에 있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 히틀러의 행위다. 그저 행동하는 것만으로 의미를 찾는 게 히틀러다. 행동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후속 행동이 따라야 한다. 다음 행위가 앞선 행위를 설명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행동은 끝없이 이어진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그저 울림뿐인, 의미를 갖지 않는 단어는 기호에 불과하다. 의미를 갖지 않는 단어는 순간의 비명에 지나지 않는다. 의미란 지속과 연관을 가져야 나타나고 실현되는 것이다. 히틀러의 말에 무슨 의미가 있던가? 그것은 찰나의 비명에 불과했다. 히틀러의 말은 구호로 전락한 비명이다. 어떤 행동도 낳지 못하는 불모의 표어, 이미 있는 행위에 갖다 붙인 외마디.
구호를 필요로 하는 것은 행위가 아니다. 히틀러는 이미 일을 저질러놓고, 말하자면 이미 상대를 급습해놓고 그 뒤통수에 대고 고함을 외칠 뿐이다. 여기서 단어는 상표로 전락한다. 저지른 행위를 분류하기 위해 붙이는 표식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히틀러의 행위에는 의미가 없다.
행위란 말, 즉 논리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히틀러의 행위는 논리 밖의 것이라 적절하게 갖다 붙일 말도 없다. 그래서 히틀러의 행위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어처구니가 없다. 입으로 말해질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말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행위는 그래서 무섭다. 논리의 저편에 있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 히틀러의 행위다. 그저 행동하는 것만으로 의미를 찾는 게 히틀러다. 행동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후속 행동이 따라야 한다. 다음 행위가 앞선 행위를 설명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행동은 끝없이 이어진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