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cinema
체리향기, Ta'm E Guilass
Jean Cocteau
2011. 3. 4. 14:32
1997년 압바스 키에로스타미 작
자신의 무덤 앞에 앉아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외롭다. 그냥 외로운게 아니라 무서울 정도로 외로워 보인다. 누구나 자기 안에 숨기고 있을 어린애의 뒷모습 같아서 외롭고 그 약한 모습이 무섭다. 할아버지의 위안에도 아니 오히려 체리를 가득 입안에 넣었을 때의 그 달콤함이 떠올라서 더 무섭다. 소소하지만 그 자체가 위안이 되는 행복함과 그럼에도 남아있을 뒷모습 사이의 무게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에게서 위안을 받았지만, 오히려 더 무서워졌으며 그 소소함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남자의 무덤에 누워 함께 죽어버렸다. 아픈 것은 무섭고 무언가 더 위대하고 숭고한 것이 있을 거라는 환상 속에서 빠져나오기엔 너무 멀리 가버렸으니 어떡하면 좋을까? 어찌됐든 나는 남자가 살았다고 생각했다. 무덤가를 덮어줄 사람을 찾기가 너무 힘들었고, 젊은이는 도망가고 신학도는 설교를 하고 늙은이의 경험을 공유하고, 같은 장소를 너무 많이 돌았고, 석양을 바라보고, 나와 닮은 타인과 비슷한 보통 평수의 집안에서 평범한 일상을 끝내니, 밤이었다. 남자는 너무 지쳐서 삶을 끝장낼 마지막 끈 하나도 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영화배우이므로 다른 역할을 찾아내 다시 살아갈 것이다.
감독은 어쩌자고 이리도 무서운 영화를 만들었을까? 내가 이 영화를 삶에 대한 위안으로 읽기에는, 감독의 위로에 안심하거나 치유받기에는...
★★★★☆
자신의 무덤 앞에 앉아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외롭다. 그냥 외로운게 아니라 무서울 정도로 외로워 보인다. 누구나 자기 안에 숨기고 있을 어린애의 뒷모습 같아서 외롭고 그 약한 모습이 무섭다. 할아버지의 위안에도 아니 오히려 체리를 가득 입안에 넣었을 때의 그 달콤함이 떠올라서 더 무섭다. 소소하지만 그 자체가 위안이 되는 행복함과 그럼에도 남아있을 뒷모습 사이의 무게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에게서 위안을 받았지만, 오히려 더 무서워졌으며 그 소소함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남자의 무덤에 누워 함께 죽어버렸다. 아픈 것은 무섭고 무언가 더 위대하고 숭고한 것이 있을 거라는 환상 속에서 빠져나오기엔 너무 멀리 가버렸으니 어떡하면 좋을까? 어찌됐든 나는 남자가 살았다고 생각했다. 무덤가를 덮어줄 사람을 찾기가 너무 힘들었고, 젊은이는 도망가고 신학도는 설교를 하고 늙은이의 경험을 공유하고, 같은 장소를 너무 많이 돌았고, 석양을 바라보고, 나와 닮은 타인과 비슷한 보통 평수의 집안에서 평범한 일상을 끝내니, 밤이었다. 남자는 너무 지쳐서 삶을 끝장낼 마지막 끈 하나도 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영화배우이므로 다른 역할을 찾아내 다시 살아갈 것이다.
감독은 어쩌자고 이리도 무서운 영화를 만들었을까? 내가 이 영화를 삶에 대한 위안으로 읽기에는, 감독의 위로에 안심하거나 치유받기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