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MARK/literature
미궁에 대한 추측 / 이승우
Jean Cocteau
2010. 7. 27. 08:23
그는 1900년부터 크노소스의 발굴을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크고 복잡하고 이상한 건물을
발견했다. 전설적인 미노스 왕이 다스리던 크노소스 궁전으로 밝혀진 이 건물은 완만한 경사면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 때문에
이쪽에서 보면 1층인 곳이 다른 쪽에서 보면 3층이기도 하고, 어떤 쪽에서는 4층으로 보이기도 했다. 건물 한가운데 직사각형
모양의 넓은 정원이 있었으며, 그 정원을 둘러싸고 수많은 크고 작은 방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1층만 해도 방의 수가 백 개가
넘었다. 그 방들 가운데는 제실과 집무실과 아틀리에, 또는 창고 같은 식으로 그 용도를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훨씬 많은 방들은 무엇 때문에 필요했을까, 하는 질문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훨씬 의심스럽고 이상스러운
것은 그 건물 내부의 한없이 좁고 길고 꾸불꾸불한 통로와 턱없이 많은 계단들이었다. 그 안에서 길은 길을 만나 길이 된다. 방향
감각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고, 마침내는 어디가 들어왔던 곳인지, 어디가 나가는 곳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이 한없이 복잡한 구조의 건물에, 그래서 '라비린토스(미궁)'라는 이름이 붙여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