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MARK/humanities

세계화의 덫

Jean Cocteau 2010. 7. 27. 08:15

만약 현재 유행하고 있는 신고전파 경제학 이론이 타당하다면, 이런 파국적인 노동시장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어야 한다. 오늘날까지도 자유무역의 전도사들은 국경을 넘나드는 무제한적인 상품무역이 모든 참가자들에게 이익이 되고, 모든 국가들의 복리를 증진시킬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하여 교수들과 정치가들이 들이대는 것은 언제나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가 고안한 '상대적 비용우위 이론'이다. 당시 리카도는, 어떻게 해서 국제 교역이, 교역상대국에 비하여 생산성이 떨어지는 나라들한테도 이익을 가져다 주는지를 해명하고자 했다. 그는 이것을 영국과 포르투칼 사이의 면직물과 포도주 산업을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리카도의 이론은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가히 천재적이다. 그의 이론은 왜 예로부터, 각국이 자신한테 필요한 모든 물건들을 독자적으로 생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국가들 사이에서 국제적인 교역이 번창해 왔는지를 해명해 준다. 단지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현재의 세계에는 거의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리카도의 무역이론은, 이미 오래 전부터 타당하지 않게 되어버린 한 가지 전제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상대적 가격우위는, 오직 자본과 민간기업들이 이동하지 못하고 자기 나라 국경선 안에 머물 경우에만 국제무역을 추동한다. 리카도에게는 이것이 자명한 일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자기가 태어난 조국을 떠나서 낯선 정부한테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은 사람들이 불안해 하기도 하고 거부감을 갖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바로 이것이 자본의 이동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 나 한 세기 반이 지난 지금 리카도의 근본전제는 완전히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오늘날 자본보다 더 이동력이 뛰어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현재 국제투자가 무역의 흐름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고 있으며, 광속도로 급속히 진행되는 수십억 달러의 자본 이전이 특정한 나라와 그 나라 화폐의 환시세 및 국제적 구매력을 결정하고 있다. 상대적 비용우위는 이제 더 이상 사업의 추진력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시장, 모든 국가들에 동시에 적용되는 절대적 우위이다. 초국적기업들은 임금이 가장 헐하고 사회보장 지출이나 환경보호 비용을 전혀 물지 않는 곳에서 상품을 생산하도록 조직함으로써 그때마다 상품비용의 절대적인 크기를 줄이고 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상품가격뿐만 아니라 노동력의 가격도 떨어지게 된다.

(…) 생상과 자본이 더 무제한적으로 국경선을 넘어 이동 가능하게 될수록 저 거대한 조직, 초국적 콘체른(거대한 기업연합체)들은 더욱 강력해졌고 통제불가능해졌다. 오늘날 초국적 콘체른들은 각국 정부들과 유권자들을 모두 다 위협하고 있으며, 그들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박탈하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3국 이상에 걸쳐서 사업장을 가지고 있는 초국적 기업의 수를 4만개 정도라고 헤어리고 있다. 1백대 초국적 기업들은 연간 약 1조4천억달러에 달하는 판매고를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초국적 콘체른들은 전세계 무역의 2/3를 점유하고 있으며, 이 중 약 절반은 콘체른 내부 네트워크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은 '세계화'의 중심에 서 있으며, '세계화'를 부단히 추동하고 있다. 현대적인 물류와 저렴한 운송비용 덕분에 그들은 모든 대륙들을 가로질러 개별 생산 공정들을 통합시키고 집중시킬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40개국에 걸쳐서 1천 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거대한 기계설비 콘체른 아시아 브라운 보베리ABB처럼 잘 조직된 콘체른들은 필요한 경우 각 완성품들 또는 부분품들을 불과 며칠 사이에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옮겨서 생상할 수 있다. 이제 개발 국가들 및 일국 기업들은, 세계무역에 있어서 상품을 공급하는 주체가 아니며, 무역 결과 획득된 이윤을 국가의 경계선 내에서 분배하는 것을 둘러싸고 협상 및 투쟁하는 주체도 아니다. 그 대신 이제 만국의 프롤레타리아들은 전 세계적으로 조직된 생산과정 속에서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일자리를 두고 피눈물나게 경쟁하게 되었다.

(…)

1990 년대가 시작되면서부터 이 경향을 우리 모두가 더 이상 간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선진사업국 정부들은 이러한 경향에 대하여 브레이크를 밟기는커녕 오히려 가속페달을 진짜 힘차게 밟고 있다. 서유럽 국가들은 마침내 1993년 벽두에 <유럽단일시장>을 출범시켰다. <유럽 92>라는 기획 제목하에 그들은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부터 덴마크의 코펜하게까지 자본, 상품, 서비스가 국경선을 넘어서 이동하는 데 지장이 되는 거의 모든 장애물들을 제거했다. 이에 대하여 미국, 캐나다, 멕시코는 북아메리카 자유무역지대, 즉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 Trade Agreement/NAFTA>을 체결함으로써 대답하였다. (…)이 모든 것이 참가국들에게 진정한 복리증진의 도깨비 방망이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들 이야기되었다. 예컨대 1988년 브뤼셀에서 유럽 공동체EC 운영위원회가 단일시장 프로젝트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데 사용하였던 1천 페이지가 넘는 이른바 <체치니 보고서>는 6백만 명분의 새로운 일자리 보장은 물론, 국가재정적자의 2% 축소, 4.5%의 추가 경제성장을 약속했었다. NAFTA와 WTO의 출범과정에도 이와 비슷한 약속이 반주음악으로 연주되었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는 안타깝게도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졌다. 유럽단일시장은 유럽 기업들한테 직정한 '경쟁채찍'(<디 차이트>지)으로 되었으며, 전대륙을 가로질러 전례를 찰아볼 수 없는 경영합리화 물결을 불러일으켰다. 실업자 수는 우기의 강물처럼 불어났으며, 국개재정적자도 늘어났다. 이에 반하여 경제성장 속도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

1996 년 현재, 거의 동시적으로 세 개의 무역자유화 추가조약이 준비중에 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거인국 중국의 세계무역협정 참가에 관한 조약, 민족국가 단위 통신 독점체들의 폐지에 관한 조약, 그리고 콘체른들이 더욱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세계무역협정 참가국들이 외국기업들의 자국내 투자와 관련된 규정들을 최저수준으로 통일시킬 것에 대한 조약 등이 그것이다. WTO사무총장 레나토 루지에로는 심지어 전세계적으로 모든 관세를 완전히 철폐하는 구상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회원국 정부들한테, 2020년까지 블록 수준의 모든 조약들을 폐지하고 세계전체를 자유무역지대로 만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볼 때 이것은 고용위기를 더욱 고조시킬지도 모르는 계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으로부터 브뤼셀과 본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경제정책가들은 이러한 '세계화'구상에 집착하고 있다.

'세 계화의 덫'은 마침내 먹이를 완전히 포획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의 정부들은 마치 자기가 놓은 덫에 단단히 걸려든 듯, 일체의 진로수정을 용납하지 않는 '어떤 정책'의 포로가 된 것처럼 보인다. 공교롭게도 자본주의 반혁명의 모국, 미국의 국민들이 그 영향을 가장 격심하게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