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MARK/humanities

숙명의 트라이앵글/노암촘스키

Jean Cocteau 2010. 7. 27. 08:08

유대 정착민들이 저지른 그 어떤 행위보다 훨씬 더 야만적이었던 유럽의 식민지 역사를 고려하면, 이스라엘이 토착민들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이 비난하는 것은 위선적이라는 주장이 종종 제기된다. 만약 그런 주장이 타당하다고 받아들여진다면, 이전에 나왔던 그와 비슷한 주장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를 들어,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만주에서 저지른 일은 유럽의 방식을 따른 거라고 주장했다. 또는 만약 이스라엘이 미국의 식민주의자들이 독립 이후 한 세기 동안이나 말 그대로 인간 노예에 탐닉했던 사실을 정당화의 근거로 들이대면서 아랍 주민들을 노예화한다고 가정해 보라. 위선적이라는 비난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든지 간에, 유럽의 문명화라는 돌림병이 전 세계를 휩쓸던 당시에 용인되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행위들은 이제 더 이상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이스라엘인들은 종종 자신들에게는 다른 이들보다 더 높은 기준을 적용한다고 불평한다. 그들이 아메리카 선주민들을 학살하고 노예화한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그런 불평을 하는 것이라면, 그런 주장이 역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아주 옳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 세계에서 이스라엘인들은 진지하고 비판적인 분석에서 대체로 자유로웠다. 적어도 진실된 역사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미국에서는 그렇다. 미국에서 이스라엘인들은, 무고한 민간인들을 살해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이며 유대인들의 정당한 고향땅을 내주지 않으려는 야만인들에 둘러싸여 있는 상황에서도 바할 바 없이 높은 도덕적 원칙을 따르는 사람들로 묘사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분쟁은 때로는 "정당함에 맞선 정당함"의 사례 중 하나로 묘사되어 왔다. 비록 이렇게 묘사하는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의 도덕적 정당성을 받아들이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이는 논쟁해 볼 여지가 있는 (그리고 나의 견해로는 방어할 수 있는)주장이다. 그러나 그런 질문의 답을 찾아감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게 많을지는 확실치 않다. 이스라엘은 현실이고, 그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비록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와 반대되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점점 필사적이 되어 간다고 여기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지역을 지배하는 힘을 가진 이스라엘과 미국이라는, 거부주의 진영을 이끄는 두 나라에 의해 민족 자결권을 부정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해서는 그들 역시도 현실이고 그 자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미국인들이 질문을 던지고 답해야만 하는 핵심 주제인 것이다.




1987년 12월, 팔레스타인 항쟁(인티파다)이 발생하기 몇 주 전에 가자에서 작은 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인티사르 알 아타르라는 이름의 팔레스타인 소녀가 학교 마당에서 근처에 있는 구쉬 카티프 유대 정착촌의 주민이 쏜 총에 맞아 살해된 것이었다. 살인자 시몬 이프라는 한 달 뒤 체포되었지만, 구속할 정도로 "범죄가 심각하지 않다."는 대법원의 결정에 의해 보석으로 풀려났다. 1989년 9월, 이프라는 과실 치사 혐의를 제외한 모든 혐의에 대한 무죄를 선고받았다. 담당 판사는 그가 학교 마당에서 그 소녀에게 총을 쏴서 깜짝 놀라게 하려던 것이었을 뿐 살해할 의도가 없었으므로 "이는 그를 감옥에 가둠으로써 처벌하고 예방하며 교훈을 가르쳐야 할 범죄 사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강종했다. 이프라가 집행유예 7개월을 선고받자, 당시 법정에서 방청 중이던 유대 정착민들에게서는 노래와 춤이 터져 나왔다.



모샤브에 사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어느 정착민(서구에서 태어나 제대로 교육받고 안정된 삶을 누리는 신뢰감을 주는 외모의 인물)은 다소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오즈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이 남자의 견해를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 예를 보려면 Boza Evron, "The Nightmares of C" (오즈의 인터뷰에서는 그를 이렇게 불렀다), Davar, Feb, 4, 1983.) 그가 보기에는 이스라엘이 "미친 국가"가 되어야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거칠고 정상이 아니어서 주변 국가들에게 위험한 나라라는 걸 이해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핵무기를 가지고 "유전 지대를 불태우거나", "3차 대전 같은 전쟁을 일으킬" 능력이 충분한 나라라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상처 입은 동물을 화나게 하지 않으려고 우리 주위에서 조심조심 행동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이는 리처드 닉슨의 "미친 사람 이론"에 해당된다. 그럼 의미에서 레바논 전쟁은 그런대로 괜찮은 전쟁이었지만, 충분치는 않았다. 아인 엘 힐웨를 언급할 때는 이런 말도 했다. "우리가 그 성가신 인간들의 소굴을 완전히 파괴하지 않은 건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다." 사브라·샤틸라 사건에 대해서는, 팔랑헤에게 맡겨 두는 대신에 "우리의 섬세한 손으로 직접 처리했어야 되는 일이었다." 또한 "겨우 아립인 5백 명 죽인 걸 가지고 학실이라 부를 수 있나?"라고도 했다. "우리는 그와 비슷한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킬 것이며, 그들이 당할 만큼 충분히 당했다고 판단될 때까지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파괴할 것이다." 레바논 전쟁의 커다란 상과는 그 전쟁이 전 세계적으로 반유대주의 감정을 불러일으켜, 책이나 쓰고 음악이나 연주하면서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종종 "아름다운 영혼들"이라고 비웃음당하는 "착한 지드(유대인들을 욕하는 표현) 모두를 전 세계가 미워하게 됐다." 는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이 나아가는 방향을 두려워하던 예샤야후 레이보비츠 교수가 절망적인 비난의 표현으로 사용한 "유대 나치"라는 호칭을, 그는 아주 만족스러워한다. 이 남자가 추구하는 목적은 "아랍인들을 필요한 만큼 많이 죽이거나 내쫓고 불태우며, 모두가 우리를 증오하게 만들고,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삶의 토대를 뒤흔들어 그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로 울면서 달려오게 만드는 것"이다. 그는 타스마니아의 선주민들을 완전히 전멸시켰던 호주인들이나 폭탄 두 발로 수십만 명의 생명을 앗아 갔던 트루먼을 그대로 따라하고 싶어한다. 유대인들이 책이나 쓰고 앉아 있는 대신 팔레스타인에 와서 "아랍인 6백만 명, 아니 백만 명쯤만이라도 죽였더라면", 유대인들은 이미 "수에즈운하에서 유전 지대까지"이르는 영토와 2천 5백만 명의 인구를 가진 민족이 됐을 것이다. 그런 실수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했다. 그런 뒤에 문화와 문명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