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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classical cinema

도살자, Le Boucher

1969년 끌로드 샤브롤 작

스릴러의 번외편 같은 영화. 이 영화에서 살인은 무섭지 않다. 엄연히 연쇄살인범이거늘 그의 살인은 도무지 나올 생각을 않고, 모든 범죄는 이웃들의 단편적인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한다. 웃긴 건 직업은 또 무지 뻔하다. 그런데 재밌게도 욕망과 믿음이 충돌하는 순간 서스펜스가 서늘하게 밀려온다. '엘렌'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갑자기 공포 영화의 효과음이 되어버린다. 그러더니 영화는 또 다시 뒤바뀐다. 그의 칼은 욕망이 아닌 사랑을 표현하는 물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제야 이건 사랑 이야기였다는 걸 깨닫는다. 또한 이 영화의 서스펜스는 남자가 아닌 엘렌에 의한 것이었음을. 직선적인 살인마적 혹은 순애보적 캐릭터에 비해 그녀의 눈빛, 이야기, 행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의뭉스럽다. 명료하지 못한 이 복잡함이야말로 서스펜스가 아닐까? 엘렌의 무관심한 듯한 눈빛이 이젠 강을 마주한다. 강이 흘러가듯 시간도 조용히 흘러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