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데이빗 린치 작
이매진에 실렸던 것 중에 데이빗 린치의 형상을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과 병치시켜 풀어나가던 것이 있었다. 내가 그리도 해괴하고 끔찍한 걸 싫어하면서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음에도 계속해서 데이빗 린치의 영화를 보고 또 보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깨달았다. 그것은 내가 처음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과, 데이빗 린치의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것이 같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엘리펀트 맨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프란시스 베이컨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매진에 실렸던 것 중에 데이빗 린치의 형상을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과 병치시켜 풀어나가던 것이 있었다. 내가 그리도 해괴하고 끔찍한 걸 싫어하면서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음에도 계속해서 데이빗 린치의 영화를 보고 또 보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깨달았다. 그것은 내가 처음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과, 데이빗 린치의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것이 같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엘리펀트 맨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프란시스 베이컨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형체를 찾고자 한다면 '이레이저 헤드'보단 엘리펀트 맨에서 더 빨리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존 메릭의 어머니가 임신 중에 코끼리에게 공격당한 후, 고통에 몸부림치는 얼굴의 형상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똑 닮았다. 또 실존 인물이고 실제로 존재하는 병이지만 존 메릭의 형상 또한 베이컨의 그림과 비슷하다. (그래서 궁금하다. 이 소재가 어떻게 해서 데이빗 린치의 손에 들어갔을까? 단지 헐리웃 메이저 영화사에서 그리려던 존 메릭의 캐릭터가 우연히 데이빗 린치의 손에 들어갔던 걸까? 이것이 우연이라면, 이런 완벽한 우연은 행운이다.) 게다가 후반부에 서커스 단장은 아픈 존에게 "그놈의 살덩어리"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베이컨의 그림이야말로 '살덩어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고통받는 인간은 고기다. 이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베이컨이 남긴 말이다.) 형체 없는 몸부림, 끝없는 절규의 구멍. 고통은 참으로 연약하다. 그리고 맛있다.
누구라도 몸에 남겨진 상처의 흔적을 자꾸만 쳐다보려 하거나, 끔찍한 사고 현장에 눈을 고정한 채 지켜본다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저 먼 나라의 빼빼 마르고 배만 툭 튀어나온 꼬마의 부르튼 입술을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쳐다본 경험이 있다. 왜 그리도 고통을 지켜보고 싶어할까? 왜 사람들은 엘리펀트 맨을 징그럽다 여기면서도 그렇게 보고 싶어하는 걸까? 엘리펀트 맨의 얼굴은 고통 그 자체다. 때문에 그 누구도 쉽사리 다가가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내면을 보자. 얼마나 다정하고 연약하며 감성적인가? 스스로 말하듯 그는 코끼리가 아니라 인간일 뿐이다. 그런 절규의 현장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그럼에도 쉽게 바뀌질 못한다. 그저 어느 죽은 동물의 살덩어리를 바라보듯 눈빛을 빛낸다. 죽은 동물의 살덩어리는 역겹지만, 익히고 나면 맛있다. 죽음의 향기를 내뿜는 매혹적인 쫄깃함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엘리펀트맨을 먹었다. 입이 아니라 눈으로. 고통 덩어리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음, 제대로 익혔군. 음, 피비린내가 나는군. 음, 너무 질겨. 음, 여태까지 이런 맛은 처음일걸. 음. 음. 음. 음... 고기를 다 소화시키고 나면 그들은 무표정했던 표정을 풀고 옆 사람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충격적이었어. 갑자기 내 몸에 감사해지는 걸." 혹은 "깜짝 놀랐어. 너무 놀라서 당시엔 얼어버렸지만, 지금 생각해보니까 가여운 존재 같아. (하지만 다신 보고 싶진 않아, 라는 말을 안쓰러워하는 표정 뒤에 감춰버릴 것이다)" 내가 아직 대다수의 표준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나 예의상 동정심을 내보이며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고 삶을 축하한다. 내가 고기 덩어리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에 축복을 내리면서 말이다. "왜 그렇게 머리가 크죠?" 엘리펀트맨을 놀리며 무리를 지어 쫓아다니는 아이들을 보아라. 아이들의 모습이 버릇없고 추악해 보이나? 아이들은 우리에게 배운 사회성과 배타성을 무표정이나 동정심 어린 표정 뒤에 감추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뿐이다.
가끔 순진한 사람들은(요즘엔 바보 같다는 말로 쓰인다) 자신의 순수한 고통을 내보인다. 그리고 곧 상처받는다. 사람들은 매너 있어진 거지 착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엘리펀트 맨을 보고 기억해둘 것은 딱 두가지 뿐이다. 고통을 돕는 건 정상적인 사회 테두리를 벗어난 해괴한 고통들이거나 순수하게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뿐이다. 전자나 후자나 찾아보거나,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영원한 고통에 몸부림치지만 사람에게 멀찍이 떨어져있는 형상을 지켜보면서 말이다.
★★★★
가끔 순진한 사람들은(요즘엔 바보 같다는 말로 쓰인다) 자신의 순수한 고통을 내보인다. 그리고 곧 상처받는다. 사람들은 매너 있어진 거지 착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엘리펀트 맨을 보고 기억해둘 것은 딱 두가지 뿐이다. 고통을 돕는 건 정상적인 사회 테두리를 벗어난 해괴한 고통들이거나 순수하게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뿐이다. 전자나 후자나 찾아보거나,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영원한 고통에 몸부림치지만 사람에게 멀찍이 떨어져있는 형상을 지켜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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