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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cinema

세가지 색-화이트/평등, Trzy Kolory: Bialy

 세 가지 색 첫 번째 연작 블루에서 줄리엣 비노쉬는 믿음에 배반당함으로써 차가운 자유를 얻었다. 현대적 신화에 대한 조롱과 자유에 대한 키에슬로브스키만의 깊은 철학이 돋보였다. 민주주의라고 믿고 사는 이 세계에서 자유는 공기와도 같은 것이기에 한 번도 사유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키에슬로브스키에게 몇 가지 답을 얻기도 했다. 또 감독 특유의 건조한 화면이 빛을 발하기에 좋았던 푸른 색감과 절묘한 음악의 사용이 가장 두드려졌던 영화였다. 
 두 번째 연작 화이트, 평등이다. 이 영화는 다분히 정치적이다. 화이트는 개인의 이야기를 그려낸 블루에 비해 국가 간의 메타포적인 영화였기에 비교적 쉬운 영화적 화법으로 만들어져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다. 첫 시작은 여러 가지 장면이 끊겨 나오지만 크게 보자면 폴란드 남자와 프랑스 여자의 결혼 장면과 이어 결국 '성생활 불가능'의 이유로 이혼하게 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물론 남자 쪽의 문제다. 이혼 소송 때문에 법정 계단 위를 오르던 남자가 앞에 모여 있는 평화의 상징 비둘기를 넋 놓고 바라보는 모습이나 그런 그의 어깨에 '하얀' 똥을 싸지르는 비둘기나 말해 무엇하나. 이혼 소송 중에서도 본인이 프랑스 말을 못하기 때문에 무시하냐고 따지는 남자의 모습까지 보고 나면 참으로 애처롭다. 땡전 한푼 없고 주머니엔 전부인의 미용실 열쇠가 들어있었을 뿐이고 거기서 새우잠을 잤을 뿐인데 곧 들켜 방화범이 되고, 지하철 역에 앉아 구걸까지 하는 지경에 이른다. 거기서 같은 조국 사람을 만난다. 여기에 또 다시 비둘기가 등장하는데 같은 처지에 놓인 폴란드 남자 둘의 앞에선 무척이나 고분고분하다. 닭둘기 새끼, 평화조차 사람 차별한다.
결국 남자는 어찌어찌 여차저차해서 폴란드로 돌아가는데 공산 국가에서 이제 막 자본주의의 물살이 급격하게 밀려온 당시의 배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남자는 다시 전부인을 얻기 위해 돈을 벌기 시작하는데 자본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투기 중의 투기 "땅투기"로 알부자 된다. 물론 땅에 대한 정보는 자신을 보디가드로 고용한 직장 사람의 이야기를 몰래 엿듣다가 얻게 된 것이다. 음흉한 놈이라고 불러도 좋다는 남자나, 비즈니스니까 악수를 청하는 직장 사람이나 참으로 전형적이다. 난 비도덕하다! 하지만 너나 나나 똑같은 놈인데다 법망도 충분히 피해 갈 수 있는데, 나처럼 안하는 놈이 이상한 놈 아닌가? 여긴 자본주의 세상인데! 그렇군 넌 쥐새끼지만 비즈니스니까 계약하겠다, 여긴 자본주의 세상이니까! 고대의 모습은 벽화로 남고 중세의 모습은 초상화로 남고, 현대의 모습은 악수하는 두 사람이 찍힌 사진으로 남게 될 테다.
 어쨋거나 이제 강대국의 모습을 되찾았으니 그토록 그립던 전부인을 다시 부른다. 근데 한숨쉬며 무시한다 씨부럴. 결국 자신의 전재산을 전부인에게 물려준다는 유언서를 작성하고, 돈으론 안되는 거 없다는 운전사 말대로 러시아인(애잔한 러시아)의 시체로 거짓 장례식을 꾸민다. 그리고 여자는 돈을 받으러 폴란드까지 날아온다. 돈도 보여줬으니 이제 남성성도 되살아나고 열심히 붕가붕가한다. 전부인은 곧바로 전남편과 사랑에 빠져 행복해 한다. 아아, 남자의 순애보여... 일리가 없다. 다음 날 남자가 사라지고, 전부인은 전남편의 살인 용의자로 교도소에 잡혀 들어간다. 복수다.
 복수로써 드디어 둘은 평등해졌다! 남자의 순애보로 이 영화가 끝이 났다면 그건 용서에 관한 것이지 평등에 관한 것이 아니다. 무일푼 거지였던 남자가 부자가 됐으니 둘이 동등해졌나? 그럼 알거지일 때 방화범으로까지 몰렸던 남자의 상처는 무엇으로 보답하는가(지하철에서의 전화 내용은 너무 애잔해서 쓰기도 미안하다). 그까짓 과거 일들 잊고 지나가라고 하면 답없다. 평등해지기 위해선 서로 존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라는 건 그냥 프랑스 대혁명 때나 얘기할 수 있는 것들이다. 현실의 평등은 나만큼 상처 입어야 하고, 나만큼의 재산을 갖고 있어야 하고, 나만큼의 신체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결국 여자는 교도소 안에서 남자를 사랑한다고 나가면 폴란드에서 당신과 살겠다고 몸짓으로 이야기하고 남자는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둘이 평등해졌으니 이제 붕가붕가도 맘껏 하겠지. 이 악취미적인 평등의 결말이 희망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화이트의 아쉬운 점은 평등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 때문에 지나치게 함축적으로 보여지고 넘어가는 부분들이 많다. 정치적이래도 그 매체가 영화인 이상 이야기(이미지) 자체로도 보여져야 하는데 남자와 여자의 비정상적인 사랑 이야기가 감정에 대한 설명 부족으로 관객에게 확실히 다가가지 못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