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을 보라
이젠하임 제단화 속의 갈기갈기 찢겨진 예수는 아마 <페스트 책형>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보통의 <그리스도 책형>에서 예수가 신성과 위엄을 간직한 채 묘사되는 데 반해, 페스트가 만연하던 시대에 나온 <페스트 책형>에서는 똑같이 십자가가 달린 예수임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옷이 갈기갈기 찢겨지고 고통에 찬 모습으로 묘사된다고 한다. 아마 페스트의 공포에 떨었던 인간들이 자신들의 불안한 파토스를 예수의 모습에 그대로 투영했기 때문이리라. 그뤼네발트는 왜 이렇게 그리스도의 몸을 가혹하게 다루는 걸까? 인간들의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려고?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죽음의 승리를 말하기 시작했다. 중세 전성기 유럽의 허공을 덮고 있었던 죽음의 보편적 승리. 이 승리가 예수에게까지 적용되는 듯이 보인다. 이 작품 속에서 예수는 승리자가 아니다.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해야 할 그 역시 여기서는 가엾은 희생자로 나타난다. 예수의 십자가 밑에서 예수를 조롱하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조롱. "자기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마가복음 15:31)
사실 죽음의 승리는 기독교의 본질과 잘 들어맞지 않는다. 원래 기독교의 본질은 죽음의 극복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교회는 갑자기 죽음을 극복한 그리스도의 '영생의 약속' 대신에, '죽음의 승리'를 강조해야 했을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왜 굳이 불안하게 만들어야 했을까? 점차 신앙심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신의 품에 잡아두려고? 이유야 어쨌든 교회는 그리스도가 인간들에게 남기고 가신 복음을, 말하자면 구원과 영생의 '기쁜 소식'을 형이상학적 '협박'으로 변조해버렸다. 과연 신이 이를 용서하실까?
가상과 현실의 놀이
데이비드 베일리(David Bailly, 1584~1657)의 자화상은 초상과 정물의 묘한 종합을 보여준다. 먼저 책상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보라. 두개골, 촛대, 그리고 그림 오른쪽 가장자리의 모래시계. 모두 바니타스의 상징이다. 엎어진 잔, 금방 시들어버릴 저 꽃들, 그리고 하늘에 떠다니는 비눗방울. 잠시 날아다니다 톡 하고 터져버리고 말 저 비눗방울은 덧없는 인생(homo bulla)의 상징이다. 책상 위에는 그밖에도 죽으면 아무짝에도 쓸데없을 금화와 목걸이, 그리고 이미 폐허가 된 고대 문화의 무상함을 암시하는 입상과 흉상 등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가능한 모든 바니타스 상징을 여기에 모아놓았다.
한편 화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그 자신의 초상화다. '그림' 속의 화가와 '그림 속의 그림' 속의 인물을 비교해보라. 동일인이다. 하지만 '그림 속의 그림' 속의 화가는 '그림' 속의 화가보다 몇십 년 더 늙어 보인다. 무슨 뜻일까? 잘생긴 젊은이의 얼굴도 세월이 흐르면 저 늙은 노인의 볼썽사나운 몰골로 변한다는 얘기이리라. 이는 물론 명백한 바니타스다. 화면 오른쪽 책 아래 끼어 있는 종이가 이를 증명한다.
화가는 그 위에 유명한 설교자 살로모(salomo)의 격언을 적어 넣었다. 헛되도다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Vanitas, vanitas, Et omnia vanitas). 그 아래로 보이는 건 화가의 사인이다. '데이비드 베일리. 1651년.'
1651년? 이상하다. 1584년에 태어났으니까 저 그림을 그릴 당시 화가는 67세의 노인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림 속의 화가는 그보다 40년이나 젊은 20대의 젊은이다. 굳이 노화가의 진짜 모습을 찾자면, 그것은 '그림' 속의 아니라 '그림 속의 그림' 속에 들어있다. 왜 그는 4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갔을까? 알 수 없다.
어쨋든 이 때문에 그림 속에선 재미있는 의미찾기 놀이가 생긴다. 도대체 어느 게 진정한 현실인가? 그림 속의 젊은이? 아니면 그림 속의 그림의 늙은이? 물론 후자다. 지금 그는 67세의 노인이니까. 젊은이가 있는 저 공간은 이젠 흘러가버린 시절, 노화가의 아련한 기억 속에 남은 허망한 젊은 날의 꿈에 불과하다. 여기선 그림이, 그러니까 노화가의 초상이 현실보다 더 진정한 세계로 나타난다.
동요하는 전략?
바니타스 속에는 언제나 중세 메멘토 모리의 여운이 울리고 있다. 이게 바로 바니타스의 종교적 요소다. 이 공통의 종교적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중세의 마카브르와 바니타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죽음의 춤>이나 그밖에 중세의 마카브르에서 죽음은 언제나 '밖'에서 찾아왔다. 그것은 삶에 가해지는 외적인 강제였다. 반면 바니타스에서 죽음은 더 이상 외부에서 찾아오는 낯선 손님이 아니다. 여기서 죽음은 삶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 삶 그 자체 속에 들어 있는 어떤 것으로 나타난다. 죽음은 삶의 내면으로 스며들어온다. 이제 죽음은 삶에 내재한 필연성이다. 생각해보라. 죽음은 어디에 있는가? 살껍질 바로 아래 들어앉아 있지 않은가.
여기서 죽음에 대한 중세 이래의 전략은 현저히 약화되는 듯하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바탕에는 죽음을 삶의 '외적'인 힘으로 보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사망이 죄의 값'이라 말할 때, 여기서 죽음은 삶에 내재한 필연성이 아니라, 우연히 저지른 어떤 실수 때문에 '밖'에서 도입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인간은 원래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죽음이 바로 삶 그 자체에 내재한 필연성이라면? 그리하여 '위' 없이 '아래'가 없듯이, '죽음'없이는 '삶'도 있을 수 없다면? 기독교적 전략의 효과는 의문시될 수밖에 없다.
성자가 된 범죄자
연극에 3요소가 있듯이, 처형에도 3요소가 있다. 처형을 통해 권위를 과시하는 권력 집단, 그것을 보고 즐기는 관객, 그리고 이 두 집단의 만족을 위해 희생당할 범죄자. 여기서 처형당하는 자는 수동적인 역할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이야말로 이 연극의 주연이었다.
당시에 처형당하는 자들은 종종 자신들을 성자로 여겼다 한다. 비록 지상에서 죄를 지었지만, 이제 죄를 회개하고 신을 받아들여 교회와 국가가 주는 처벌을 달게 받으면, 죄를 씻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거다. 잔혹한 고문과 처형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죄를 씻는 지상에서의 '연옥'이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연극의 연출자들, 관객들에게 저주를 퍼부어서는 안 된다. 성자들이 그 혹독한 고문을 견디고 천국에 이른 것처럼, 나도 신이 주신 이 마지막 시험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참아내야 한다. 대충 이런 논리였다.
어쨌든 범죄자들은 이 마지막 희망에 따라 자신의 처형을 성스럽게 연기했다 한다. 가령 1746년 암스테르담에서 몇 명의 여인이 커다란 바퀴로 몸을 짓이기는 처형을 당했는데, 그들 중 하나는 바퀴가 다리를 짓이기고 팔을 부러뜨리는 동안에도 계속 성가를 불렀고, 바퀴가 그녀의 가슴을 짓이기는 순간에야 비로소 성가를 멎었다고 한다.
이런 장면을 보고 당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1760년대 어떤 사람은 일기에, 자기가 보았던 것 중 두 번의 처형은 "자판관들과 형리는 물론,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도 커다란 즐거움을 주었다"고 적고 있다. 이렇게 하여 순교할 성자들이 없던 시절에 범죄자들이 성자가 되었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 나오는 얘기다. "범죄자들 중에는 죽어서 정말로 성자가 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얘기는 후세로 전해 내려갔고, 그들의 무덤은 잘 관리되었다."
이 재판 성자들의 처형은 재판관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들의 겸허한 회개는 재판과 처형의 정의로움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형은 관객들에게도 감동을 주었다. 거기에는 저 참혹한 처형을 맞아 마지막 순간까지 성스럽게 처신하는 가슴 뭉클한 죽음의 미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형은 연극의 주연들에게도 감동을 주었다. 잔혹한 고문과 처형 속에서 자신을 성자와 동일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극도의 고통은 극도의 자아도취적 쾌락으로 바뀌어버린다.
결국 처형은 한 편의 완벽한 연극이었던 셈이다. 연출자도 울고, 관객도 울고, 연기하던 배우마저 울었다. 이 완벽한 카타르시스.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이 완벽한 결합. 이보다 더 완벽한 연극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젠하임 제단화 속의 갈기갈기 찢겨진 예수는 아마 <페스트 책형>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보통의 <그리스도 책형>에서 예수가 신성과 위엄을 간직한 채 묘사되는 데 반해, 페스트가 만연하던 시대에 나온 <페스트 책형>에서는 똑같이 십자가가 달린 예수임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옷이 갈기갈기 찢겨지고 고통에 찬 모습으로 묘사된다고 한다. 아마 페스트의 공포에 떨었던 인간들이 자신들의 불안한 파토스를 예수의 모습에 그대로 투영했기 때문이리라. 그뤼네발트는 왜 이렇게 그리스도의 몸을 가혹하게 다루는 걸까? 인간들의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려고?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죽음의 승리를 말하기 시작했다. 중세 전성기 유럽의 허공을 덮고 있었던 죽음의 보편적 승리. 이 승리가 예수에게까지 적용되는 듯이 보인다. 이 작품 속에서 예수는 승리자가 아니다.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해야 할 그 역시 여기서는 가엾은 희생자로 나타난다. 예수의 십자가 밑에서 예수를 조롱하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조롱. "자기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마가복음 15:31)
사실 죽음의 승리는 기독교의 본질과 잘 들어맞지 않는다. 원래 기독교의 본질은 죽음의 극복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교회는 갑자기 죽음을 극복한 그리스도의 '영생의 약속' 대신에, '죽음의 승리'를 강조해야 했을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왜 굳이 불안하게 만들어야 했을까? 점차 신앙심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신의 품에 잡아두려고? 이유야 어쨌든 교회는 그리스도가 인간들에게 남기고 가신 복음을, 말하자면 구원과 영생의 '기쁜 소식'을 형이상학적 '협박'으로 변조해버렸다. 과연 신이 이를 용서하실까?
가상과 현실의 놀이
데이비드 베일리(David Bailly, 1584~1657)의 자화상은 초상과 정물의 묘한 종합을 보여준다. 먼저 책상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보라. 두개골, 촛대, 그리고 그림 오른쪽 가장자리의 모래시계. 모두 바니타스의 상징이다. 엎어진 잔, 금방 시들어버릴 저 꽃들, 그리고 하늘에 떠다니는 비눗방울. 잠시 날아다니다 톡 하고 터져버리고 말 저 비눗방울은 덧없는 인생(homo bulla)의 상징이다. 책상 위에는 그밖에도 죽으면 아무짝에도 쓸데없을 금화와 목걸이, 그리고 이미 폐허가 된 고대 문화의 무상함을 암시하는 입상과 흉상 등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가능한 모든 바니타스 상징을 여기에 모아놓았다.
한편 화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그 자신의 초상화다. '그림' 속의 화가와 '그림 속의 그림' 속의 인물을 비교해보라. 동일인이다. 하지만 '그림 속의 그림' 속의 화가는 '그림' 속의 화가보다 몇십 년 더 늙어 보인다. 무슨 뜻일까? 잘생긴 젊은이의 얼굴도 세월이 흐르면 저 늙은 노인의 볼썽사나운 몰골로 변한다는 얘기이리라. 이는 물론 명백한 바니타스다. 화면 오른쪽 책 아래 끼어 있는 종이가 이를 증명한다.
화가는 그 위에 유명한 설교자 살로모(salomo)의 격언을 적어 넣었다. 헛되도다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Vanitas, vanitas, Et omnia vanitas). 그 아래로 보이는 건 화가의 사인이다. '데이비드 베일리. 1651년.'
1651년? 이상하다. 1584년에 태어났으니까 저 그림을 그릴 당시 화가는 67세의 노인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림 속의 화가는 그보다 40년이나 젊은 20대의 젊은이다. 굳이 노화가의 진짜 모습을 찾자면, 그것은 '그림' 속의 아니라 '그림 속의 그림' 속에 들어있다. 왜 그는 4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갔을까? 알 수 없다.
어쨋든 이 때문에 그림 속에선 재미있는 의미찾기 놀이가 생긴다. 도대체 어느 게 진정한 현실인가? 그림 속의 젊은이? 아니면 그림 속의 그림의 늙은이? 물론 후자다. 지금 그는 67세의 노인이니까. 젊은이가 있는 저 공간은 이젠 흘러가버린 시절, 노화가의 아련한 기억 속에 남은 허망한 젊은 날의 꿈에 불과하다. 여기선 그림이, 그러니까 노화가의 초상이 현실보다 더 진정한 세계로 나타난다.
동요하는 전략?
바니타스 속에는 언제나 중세 메멘토 모리의 여운이 울리고 있다. 이게 바로 바니타스의 종교적 요소다. 이 공통의 종교적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중세의 마카브르와 바니타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죽음의 춤>이나 그밖에 중세의 마카브르에서 죽음은 언제나 '밖'에서 찾아왔다. 그것은 삶에 가해지는 외적인 강제였다. 반면 바니타스에서 죽음은 더 이상 외부에서 찾아오는 낯선 손님이 아니다. 여기서 죽음은 삶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 삶 그 자체 속에 들어 있는 어떤 것으로 나타난다. 죽음은 삶의 내면으로 스며들어온다. 이제 죽음은 삶에 내재한 필연성이다. 생각해보라. 죽음은 어디에 있는가? 살껍질 바로 아래 들어앉아 있지 않은가.
여기서 죽음에 대한 중세 이래의 전략은 현저히 약화되는 듯하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바탕에는 죽음을 삶의 '외적'인 힘으로 보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사망이 죄의 값'이라 말할 때, 여기서 죽음은 삶에 내재한 필연성이 아니라, 우연히 저지른 어떤 실수 때문에 '밖'에서 도입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인간은 원래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죽음이 바로 삶 그 자체에 내재한 필연성이라면? 그리하여 '위' 없이 '아래'가 없듯이, '죽음'없이는 '삶'도 있을 수 없다면? 기독교적 전략의 효과는 의문시될 수밖에 없다.
성자가 된 범죄자
연극에 3요소가 있듯이, 처형에도 3요소가 있다. 처형을 통해 권위를 과시하는 권력 집단, 그것을 보고 즐기는 관객, 그리고 이 두 집단의 만족을 위해 희생당할 범죄자. 여기서 처형당하는 자는 수동적인 역할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이야말로 이 연극의 주연이었다.
당시에 처형당하는 자들은 종종 자신들을 성자로 여겼다 한다. 비록 지상에서 죄를 지었지만, 이제 죄를 회개하고 신을 받아들여 교회와 국가가 주는 처벌을 달게 받으면, 죄를 씻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거다. 잔혹한 고문과 처형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죄를 씻는 지상에서의 '연옥'이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연극의 연출자들, 관객들에게 저주를 퍼부어서는 안 된다. 성자들이 그 혹독한 고문을 견디고 천국에 이른 것처럼, 나도 신이 주신 이 마지막 시험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참아내야 한다. 대충 이런 논리였다.
어쨌든 범죄자들은 이 마지막 희망에 따라 자신의 처형을 성스럽게 연기했다 한다. 가령 1746년 암스테르담에서 몇 명의 여인이 커다란 바퀴로 몸을 짓이기는 처형을 당했는데, 그들 중 하나는 바퀴가 다리를 짓이기고 팔을 부러뜨리는 동안에도 계속 성가를 불렀고, 바퀴가 그녀의 가슴을 짓이기는 순간에야 비로소 성가를 멎었다고 한다.
이런 장면을 보고 당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1760년대 어떤 사람은 일기에, 자기가 보았던 것 중 두 번의 처형은 "자판관들과 형리는 물론,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도 커다란 즐거움을 주었다"고 적고 있다. 이렇게 하여 순교할 성자들이 없던 시절에 범죄자들이 성자가 되었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 나오는 얘기다. "범죄자들 중에는 죽어서 정말로 성자가 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얘기는 후세로 전해 내려갔고, 그들의 무덤은 잘 관리되었다."
이 재판 성자들의 처형은 재판관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들의 겸허한 회개는 재판과 처형의 정의로움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형은 관객들에게도 감동을 주었다. 거기에는 저 참혹한 처형을 맞아 마지막 순간까지 성스럽게 처신하는 가슴 뭉클한 죽음의 미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형은 연극의 주연들에게도 감동을 주었다. 잔혹한 고문과 처형 속에서 자신을 성자와 동일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극도의 고통은 극도의 자아도취적 쾌락으로 바뀌어버린다.
결국 처형은 한 편의 완벽한 연극이었던 셈이다. 연출자도 울고, 관객도 울고, 연기하던 배우마저 울었다. 이 완벽한 카타르시스.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이 완벽한 결합. 이보다 더 완벽한 연극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