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 김문태 좀 바꿔줘 봐요."
"김문태…… 재우 씨 친구라는 그 젊은 사람? 여기 없어."
"어딨어?"
"그 사람은 골프 못 친다던데. 그래서 구치 터널에 다녀오겠다고 해서 신카페에 내려주고 왔어."
재우는 갑자기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구치는 사이공 시내에서 한 시간 반 거리 떨어져 있는 마을이었다. 해방전선은 그곳을 중심으로 총연장 250km의 땅굴을 파고, 사이공 시내를 드나들며 미국과 싸웠다. 3층으로 거미줄처럼 뚫린 구치의 터널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세계 최강의 미국을 베트남이 어떻게 이길 수 있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원 달러'를 외치며 달려드는 관광지의 아이들과 십 불의 팁에 손목을 내맡기는 술집 아가씨들을 보고 베트남을 알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조차 구치에 가면, 가서 단돈 일 원도 받지 않고 오로지 호미와 망태기만으로 24년에 걸쳐 파놓은 250km의 땅굴을 보면 전혀 다름 베트남이 있다는 사실을 소스라치게 깨닫게 된다. 김문태가 거기에 가 있다. 녀석이 골프를 치지 못한다는 것도 뜻밖이었다. 재우의 머릿속을 바람 한줄기가 뚫고 지나갔다. 갑자기 몸마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누님, 그 자식들 불쌍한 놈들이다, 생각하고 오늘 하루 끝까지 책임져줘요. 내가 이번 일 끝내놓고 세게 한턱낼게. 알았죠?"
"……."
갑자기 활기를 되찾은 재우의 목소리에 김 언니는 어리둥절한지 뭐라고 대답을 못한다. 욕실에서 나오는 재우를 보고 희은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인간의 얼굴도 돌아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