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차에 거꾸로 매달려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휴대전화는 여태 울리고 있었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여동생이었다.
"지금 뭐 해? 전화 받을 수 있어?"
"뒤집힌 차에 거꾸로 매달려 있지만 전화는 받을 수 있다."
"농담도 심하셔. 오빠 가능하면 빨리 입금해줘야겠어. 학원 등록 곧 마감이래. 유명 강사들이 망라된 종합반은 모레까지 등록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대. 번거롭겠지만 내일까지 입금해줘."
"내일까지 넣어줄게."
"오빠 진짜 뒤집힌 차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거야?"
"그래."
"오빠 오늘 좀 이상하네. 너무 오래 매달려 있지는 말고 적당히 하고 집에 들어가."
"너나 잘해."
나는 119에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했다. 간혹 시선이 마주친 운전자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들은 오늘 저녁 식사를 하거나 술잔을 기울이며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나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적당히 과장을 섞어 말해겠지. 강변로를 타고 있는데 말야, 글쎄 어떤 얼간이가 뒤집힌 차에 거꾸로 매달려 열심히 통화하고 있는 거야. 운전 중 통화는 위험하다는 공익 광고는 그렇게 찍어야 하는 거야.
피가 머리로 몰려 눈알이 시큰거리고 목이 뻑뻑했지만 비명을 지르거나 혼절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시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버지였다. 돈얘기였다. 보일러 교체에 들어가는 금액을 말하고 나서 전에 거래하던 은행은 송금 수수료가 비싸니 다른 은행 계좌로 읍감하라고 했다. 그는 은행 계좌번호를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받아 적을 형편이 아니니 나중에 다시 전화하라고 말했다. 왜 받아 적을 수 없냐고 아버지가 정색하며 물었다. 차가 뒤집혀 거꾸로 매달려 있는데 어떻게 받아 적을 수 있겠냐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 소리는 길고 무거웠다. 나중에 다시 전화하겠다고 말하고 아버지는 전화를 끊었다.
…주머니에서 뭔가가 툭 떨어졌다. 팀장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팀원들에게 돌린 즉석복권이었다. 달리 도리가 없다는 듯 나는 손톱을 세워 복권을 긁기 시작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액정 화면에 뜬 발신 번호를 확인했다. 집이었다. 전화를 받았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여보세요?"
여전히 응답이 없다. 연결이 고르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화를 끊으려다 수화기를 귀에 바짝 붙였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어떤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숨소리였다. 어느 먼 곳으로부터 아득히 들려오는 북소리처럼 뭔가를 애써 호소하는 듯한 소리였다. 그것은 딸아이의 숨소리였을 것이다. 말이 되지 못하고 소리에 불과한 웅얼거림이었다. 아이는 계속해서 웅얼웅얼 소리를 냈다. 의미를 구하지 못한 그 소리는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갓난아이의 옹알이처럼 들렸다. 전화기에 대고 나는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돌아온 것은 의미를 헤어릴 수 없는 소리뿐이었다. 오래지 않아 전화는 끊어졌고 나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쩌면 전화를 끊고 흐느끼기 시작했거나 흐느끼는 사이에 전화가 끊어졌는지도 모른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애써 참으며 나는 복권을 마저 긁기 시작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