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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MARK/humanities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정수복

 한국인의 의사소통방식을 보면 어떤 메시지를 오해 없이 정확하게 알리기보다는 듣는 사람이 눈치껏 알아들을 수 있도록 넌지시 알리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분명하고 똑 부러지게 말하기보다는 우회적으로 말하거나 두루뭉술하고 불투명하게 표현한다. 한국에서 사람 좋다는 말을 들으려면 말 속에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심정과 정을 담아 이야기해야 한다.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밝히는 사람은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 되고 인정이 많은 사람은 누구에게나 환영을 받는다. 한국인은 그만큼 이지적인 면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일이 많고 원칙과 정의보다는 인정과 상황을 앞세운다. 원칙과 규칙이 적용되어야 하는 관계도 서로의 개별적 상황을 이해해주는 정서적 관계로 만들어 놓아야 무슨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원칙은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이고 뒤에서나는 언제나 정서적 친소관계에 따라 될 일도 안 되고 안 될 일도 되게 하는 것이 한국인의 인간관계 양상이다. 감정우선주의는 집단 내 구성원들의 응집력을 강조하는 가족주의, 연고주의와 잘 어울린다. 그것은 합리성과 정의의 원칙을 무시하게 만들며 논증이나 이론적 천착을 멀리하게 만든다. 감정우선주의는 당연히 반지성주의와 비합리주의를 낳는다. 한국인은 감정이 앞서기 때문에 지적 추구가 약하고 성찰성이 부족하다. 앎에 대한 추구가 약하다 못해 반지성주의적으로 된다. 세상을 투명하게 인식하려는 욕구가 약하고 지식이라고는 그야말로 인생에 도움이 되는 수단적 지식만 추구하게 된다. 인문학 위기 밑에는 감정우선주의에서 파생된 반지성주의라는 깊은 뿌리가 자리잡고 있다.
 (…)한국인들은 술에 의해 망아적 상태에 이르고 그 상태에서 너나 없는 깊은 인간관계를 맺으려고 한다. 2차 3차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마셔서 나는 없어지고 술만 남아야 그 동안 쌓였던 감정이 해소되고 끈끈한 정이 생기고 인간적인 관계가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술판을 중심으로 한 한국인의 감정우선주의를 스크린 위에 객관화시킨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강원도의 힘>을 거쳐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해변의 여인>에 이르기까지 홍상수의 영화에는 술을 마시는 장면이 빠지지 않고나온다. 그의 영화에는 한국인의 술을 통한 정서적 관계의 형성과 비합리적 의사 소통방식이 여설히 표현되고 있다. 그의 영화를 주의 깊게 분석해보면 술자리에서 분출하는 한국인의 감정폭발 현상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술에 취해 너나 없이 하나가 되는 현상은 어떻게 보면 무당이 망아경상태에 들어가 신과 깊은 관계를 맺고 하나 되는 상태와 유사하다. 무교는 한국인의 감정우선주의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붉은 악마'가 보여준 폭발적 응원과 전 국민의 열광은 한국인의 무의식에 잠재된 무속적 신명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열렬한 새벽기도와 불같은 성령 대부흥회로 대표되는 한국의 독특한 기독교문화도 이런 감정우선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한국의 기독교도들은 초월적 세계와 대면하여 현실에서의 자신의 행위를 윤리적 원칙에 따라 합리화시키기보다는 감정적 흥분을 통해 현실을 벗어나 망아적 의식상태를 경험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정재식,2004:264)

 공적 영역뿐만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도 차이를 인정하고 합리적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차이를 무마시키고 하나의 의견에 동조하도록 강요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회의를 하다가 의견의 차이가 생기면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방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득시킬 생각을 하지 않고 차이를 덮어버리려고 애쓰는 것이 한국인의 태도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토론을 하도보면 더 좋은 의견이 형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는다. 차이는 곧바로 갈등을 불러오고 갈등은 악이라고 인식한다. 갈등의 창조적 기능을 생각할 여지가 없다. 갈등과 차이는 넘어서야 할 무엇이다.
 특히 오랫동안 가정의 평화유지를 최고의 덕으로 교육받고 살아온 한국 여성들에게 평화는 겉보기에 충돌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문제가 될 말한 것은 아예 건드리지 않고 사는" 것이 현명한 삶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보기를 들자면 어느 여성단체의 지도자가 자기보다 젊은 여성이 회의 중에 자기와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자 회의를 마친 다음 젊은 사람을 개인적으로 불러서 "결국은 우리 두 사람이 같은 의견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차이를 없애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랫사람과 벌어진 의견 충돌의 상태를 마음이 불편해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그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다. 일찍이 서구식교육을 받고 사회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그런데 보통 한국 사람들의 경우는 더할 것이다.
 갈등 회피주의는 한국인의 사고하는 습관이나 말하는 습관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인들은 무엇을 분명히 구별하고 그것들 사이에 차이를 밝히기보다는 차이를 없애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의 주장을 남이 알아들을 수 있게 분명한 방식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빙빙 돌리면서 자기의 의중을 간접적으로 알리는 의사표현방식을 선호한다. 상대방의 감정을 짐작하고 반응을 살피면서 거기에 맞추어 조금씩 자기의 의견을 내놓는 것이 신중하고 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리면 될 일도 안 되기 때문이다.
 갈등회피는 조화의 지향이라는 적극적인 가치를 지향하기보다는 대립적 상황이 주는 심리적 불편감을 잘 참지 못하는 한국인의 심리적 특성과 관련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갈등회피주의는 감정우선주의와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갈등 상황을 피하려는 한국인의 심리는 선과 악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을 꺼리게 만든다. 미국의 정치학자 알포드의 말을 빌리자면 한국사회에서는 분명 악의 존재가 실재하는데도 한국인들은 그것을 악으로 규졍하지 않는다. 이렇게 악의 정체를 제대로 규정하지 않는 사고방식은 결과적으로 악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더 큰 문제는 그럼으로써 악의 당사자, 책임자가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갈등회피주의라는 문화적 문법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정치적 상황이 크게 작용하였다. 해방 이후 형성된 남북분단체제의 지속은 남북한 양쪽에 강력한 국가체제를 형성시켰고 분학은 말할 것도 없고 남하에서도 국가는 시민사회 내부의 갈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임지현은 남북한의 정치지도자들은 '적대적 공범자'들이었다고 말한다. 최장집은 해방 이후 한국정치의 특징으로 갈등의 억압과 대안의 배제를 내세운다. 한국사회는 공적갈등을 합리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개인들 간의 갈등으로 만들어버리는 갈등의 사사화 기제를 발전시켰다. 한국 전쟁 이후 강화된 반공의식은 갈등회피주의를 더욱 강화시켰다. 남북분단 상태에서 반공의식은 한국인들에게 일종의 사회적 노이로제 현상이 되어 국가의 지배질서와 공식 이데올로기를 벗어나는 일체의 정치의식을 자체 검열하는 의식구조를 만들어냈다.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기능을 훨씬 넘어서 기존 질서에 대한 어떠한 도전도 위험한 짓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이승만에서 박정희시대를 거쳐 모든 정치적 반대운동이나 사회운동세력은 쉽게 공산주의세력으로 낙인찍혔다.



민주주의를 보기로 들어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사회는 제도적으로는 민주화되었다. 그러나 의식과 관행을 포함하는 문화적 문법의 차원에서는 아직 유교에서 비롯된 상하수직적 인간관계가 지배적이다. 제도는 단기간에 민주화할 수 있지만 의식의 민주화는 단기간 내에 일어날 수가 없다. 신분에 따른 상하관계를 자연의 질서로 믿고 따르는 '봉건적' 의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민주적 제도의 운용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근거 없는 권위에 대한 도전 가능성의 여부가 봉건적 의식과 근대적 의식을 가르는 기준이다. 스스로를 A급이 못되는 'B급좌파'로 자처하는 김규항은 한국인들이 아직도 봉건적 의식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아무래도 이 나라는 봉건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게 분명하다. 윗줄에 있는 놈들은 여전히 '마님'의 교양(사람의 귀천은 하늘이 정한 것이며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을 유지하고, 아랫줄에 있는 이들은 여전히 '머슴'의 교양(모든 것은 운명이며 주는 대로 받아먹고 죽은 듯이 일한다)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는 그 이유를 한국인들이 봉건사회에서 바로 식민통치, 그리고 극우 파시스트치하를 거치면서 3대 이상을 살아온 역사적 경험에서 찾고 있다.
 김규항이 잘 지적했듯이 한국의 근현대사는 근대적 의식으로 자각한 시민층의 형성을 가로막았다. 역대정권은 시민이 없는 상태에서 국민을 강조했다. 한국의 헌법에는 주권이 군주가 아니라 국민에 있다고 되어 있지만 오랫동안 우리는 그에 걸맞는 시민적 민주적 경험을 가져보지 못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오직 투표에 참가해서 1인 1표를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제외하고는 주로 국가에 복종해야 했다. 국민이라는 단어가 일제하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일장기와 기미가요, 전시동원과 군사훈련 등을 연상시킨다면, 박정희 유신체제를 겪은 세대에게는 국민교육헌장과 국정교과서, 교련, 국가안보 등을 연상시킨다. 김규항의 지적대로 한국인들은 일제시대와 권위주의시대를 지나면서 근대적인 시민이 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외세의 지배와 독재정권만으로는 봉건의식의 지속을 다 설명할 수가 없다. 전근대적인 봉건적 의식의 지속은 박정희시대와 일제시대 이전 조산시대에 이루어진 유교화과정까지 고려할 때 더 잘 설명될 수 있다.



 19세기 말 미국과 캐나다의 선교사들에 의해 유입된 개신교는 폐쇄적이고 전근대적이었던 한국사회를 개화시키고 근대화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성서번역, 출판산업, 근대식교육과 의료제도의 도입, 반상구분의 거부, 남녀평등과 아동인권의 존중 등은 한국사회의 전통적 가치와 규범을 근대적인 가치와 규범으로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식민지시절 한국의 개신교는 성서의 초월적 메시지에 기초하여 자유롭고 책임감 있는 개인의 인격과 권리의식을 일깨웠으며 일제에 저항하는 신앙적 기반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의 개신교는 점차 현실비판 능력을 상실했다. 그 대신 개신교는 권력에 영합하면서 세계 선교사상 유례가 없는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기독교신자였던 이승만이 해방 이후 초대 대통령이 되었고 미국의 지배적 영향력 하에 있던 제1공화적 시기 동안 한국은 '사실상 기독교국가'로 비쳐졌다. 이 시기에 미국교회가 부모라면 한국교회는 자녀라는 성경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교회 안에는 친미반공주의가 고착되었다. 1960년대 이후 권위주의정권하에서 경제성장이 지속되면서 대형교회를 지향한 한국 개신교회의 절대다수는 민주적이고 참여적이보다는 위계적이며 남녀차별적이며 권위적 조직구조를 지속 강화시켰다. 그 결과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도 유교적 전통에서 비롯된 가족이기주의와 연고주의의 틀을 대부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한국 개신교조직의 특성은 철저하게 목회자 중심이며 위계적이기 때문에 평신도들은 목사와 장로 등 교직자들의 건위에 따르면서 교회의 운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개신교는 명분상으로는 유교를 배척했으나, 실질적인 행동양식은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유교적 성향에 그대로 젖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한복 대신 양복을 입고, 사서삼경 대신 성경을 읽고, 술 담배를 금하고, 제사를 지내지 않는 등 외헝젹으로는 무교,불교, 유교 등 전통종교와 분명히 구분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조직생활로 들어가면 장로들과 목사를 정점으로 하는 유교적 권위주의가 지속되었다. 한국에서 기독교가 단시일 내에 성장한 까닭은 기독교 안에 내장되어 있는 해방적 영성의 힘을 포기하고 기존의 불의한 정치상황에 순응하고 유교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전통종교와 적당한 타협을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기독교는 초월적 영성으로 이 세상의 불의와 맞서는 긴장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의 부와 권력 추구를 정당화하며 양적 성장을 지속하는 세속화된 종교가 되고 말았다.
 (…)기독교는 고통의 승화를 핵심교리로 한다. 그런데 한국의 개신교는 치병과 관련하여 무교적 요소를 간직하고 있다. 개신교는 겉으로는 무교의 기복주의와 운명주의, 비합리성과 비윤리성을 비판하면서도 내용적으로 무교적 신앙 내용을 떨쳐버리지 못한 상태에 있다. 보기를 들어 하나님이라는 초월적 힘에 의지하여 치병을 기원하는 한국인의 기독교신앙은 무교적 신앙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유행하는 부흥회의 2부 순서는 주로 철야기도회 형식의 신유 집회인데 이것은 바로 무당굿의 일종이다. 삼삼칠 박수에 맞는 찬송가를 골라서 요란한 율동을 하고, 고래고래 고함소리로 기도하는 이 집회는 대개 신유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부흥사가 인도하는데 그는 하나님과 신자와의 중재자인 샤먼이라고 할 수 있다. 안심입명과 제재초복의 샤머니즘 집회가 특별집회라는 이름으로 교회에서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무당을 찾아가 점을 치고 부적을 사면서도 큰 갈등을 느끼지 않는다. 세계 최대 규모의 성전을 자랑하는 한국 기독교의 한 종파는 신앙을 통해 병을 고치고 물질적 축복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느 목사의 설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부자십니다. 얼마든지 무엇이든지 가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떡을 달라고 하면 떡을 주시고, 생선을 달라고 하면 생선을 주시고, 얼마든지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하나님 앞에 여러분들이 그를 우리 아버지로 믿고 사는 것을 충심으로 감사하기 바랍니다." 정도만 다를 뿐이지 한국의 대부분의 교회는 물질적 축복과 양적 성장을 추구하여 현실에서의 성공을 믿음의 증거로 삼고 있다. 그 점에서 한국의 기독교는 현세중심적 기복사상인 무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세적 물잘주의에 물든 기독교에서 초월적 세계와의 만남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에 응답하는 책임 있는 행위와 윤리적 합리주의를 기대하기 힘들다.